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08]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하나요?

김은희
2025-09-16
조회수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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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탈출을 꿈꿉니다. 지루한 회의에서, 끝없는 메신저 알림에서, 불안한 마음에서, 혹은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시간을 지우고, 또 누군가는 쇼핑에 몰두하거나 일에 파묻히며 잠시 그 불편함을 덮어두려 합니다. 그렇게 보면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은 현대인의 일상에 아주 흔한 감정입니다.


마이클 이스터는 『가짜 결핍』에서 우리는 실제로 부족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결핍을 만들어내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음식은 넘치지만,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정작 필요한 건 찾지 못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할수록 작은 불편에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결핍을 키우며 또 다른 소비와 도피로 채우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돌아보면 탈출은 달콤한 유혹이자 가장 손쉬운 선택입니다. 힘든 감정을 직면하기보다, 다른 무언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도망칠수록 불편은 도리어 커져 돌아오고,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집니다. 도망치면 잠깐은 가벼워지지만, 근본은 남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상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탈출하지 않고, 머무르고, 바라보는 것. 불안과 고독, 지루함과 초조함을 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훈련입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 처음엔 온갖 탈출 충동이 몰려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나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자리에 머물게 하고,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려 보면, 어느 순간 “지금 이대로도 괜찮구나”, “이 불편은 영원하지 않고 곧 가라앉겠구나” 하는 평안이 스며듭니다.


저는 『가짜 결핍』 속 문장 ―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가? 지루한 일상? 타인의 시선? 반복되는 업무? 아니면 삶이 던지는 숙제들? 결국 탈출은 잠시의 위안일 뿐, 불편을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만 또렷해졌습니다. 진짜 자유는 탈출 하겠다는 생각을 멈추는 데서 시작되는 듯합니다. 


결국 우리는 불편과 불안과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다만, 함께 사는 법을 익힐 수는 있습니다. 삶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회복시키는 작은 습관을 쌓아 올리는 것이지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명상, 자연 속에서 산책,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사유를 깊게 하는 독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연결을 되살리는 순간들. 이런 행위들은 우리를 도피가 아닌 현실로 되돌려 세우고, 발밑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짜 결핍』에서 저자는 중독과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그 현상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며 반복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왜 도망치려 하는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똑바로 직면할 때, 탈출의 충동 대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자아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고통과 삶의 무의미함을 두고 잠시 자신을 마비시키는 거야. 그렇게 도망치는 것, 그렇게 잠시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은, 여인숙에 머무는 소몰이꾼이라도 곡주 몇 잔이나 발효된 야자술을 마시면 발견하게 되는 길이지. 그런 순간에는 그 사람도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삶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며,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단 말이네. 그 사람은 고작 곡주 몇 잔을 마시고서,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오랜 수련 끝에 육체에서 벗어나 머무는 무아 상태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거야. 사실이 그렇다네, 고빈다.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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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이현우 서평가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가짜 결핍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재경 옮김, 부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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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고리에 빠지는 원리

결핍의 고리는 오래전 생존을 위해 뇌가 발전시키 도박이다. 그 덕분에 인간은 불확실성에 직면하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거듭 시도했다. 

그만두는 사람은 죽는 거다. (p.72)

우리의 진화적 본성과 현대문명 사이의 괴리는 진화심리학이 즐겨 다루는 주제다. 수십 만년 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인류는 부족한 자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왔고 '결핍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예측불가능한 보상의 기회를 발견하면 그 과정을 즉각적으로 반복하게끔 설계돼 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자원이 지나치게 풍요롭게 제시되는 현대사회에서도 결핍의 고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가짜 결핍'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마음 비우기로서 명상은 한가지 해법이 될 수 있다.  - 이현우 서평가

📚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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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노름을 하고 계속 탕진하면서 부에 대한 자신의 경멸감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손실이 발생하면 평정심을 잃었고, 늑장부리는 채무자에 대해서 인내심을 잃었으며, 구걸하러 온 거지에게 온정을 베푸는 선량함도 잃었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는 기쁨도 잃었다. 한판 도박에 수천 금을 잃고도 웃어넘기던 그가, 장사에 더 지독해지고 더 옹졸해졌으며 때로는 밤에 돈에 대한 꿈까지 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흉측한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침실 벽에 걸린 거울에서 늙고 흉측하게 변한 자기 얼굴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구토감이 엄습해올 때마다, 계속 도피처를 찾고 새로운 도박판으로 도피했으며 쾌락과 술의 마취 속으로 도망쳤다. (p.98)

동양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졌던 작가 헤르만 헤세가 '인도의 시'라는 부제의 작품 <싯다르타>를 통해서 '깨달음'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부처(고타마 싯다르타)와는 다른 인물로 헤세는 싯다르타의 인생 여정을 통해서 고타마와는 다른 깨달음의 경로를 제시한다. 강물의 영원한 흐름을 지켜보며 각성하는 뱃사공이 고타마를 대신하는 새로운 스승이다. 명상의 진리는 뱃사공 바주데바의 가르침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 이현우 서평가

📚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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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맹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한 가지 문제에 시달린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방해받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우리는 주변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의 항상 자신만의 거품 안에 갇힌 채 떠다닐 뿐이며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 거품을 뚫고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온다.   (p.43) 

식물도 생각한다는 주장은 난센스로 들린다. 뇌가 없을 뿐더러 식물은 신경계 자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사고 혹은 '생각방식'을 다른 각도에서 정의하면 식물은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보여준다. 매 순간 많은 결정을 내리고 환경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면에서 식물은 결코 동물보다 열등하지 않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저자는 신경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능 모델을 제시한다. 신경중심주의에 대한 도전이란 면에서 식물지능은 명상과 만날 수 있다.  - 이현우 서평가

📚 도요새에 관한 명상 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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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옥

유복자로 태어난 현구였기에 어머니는, 서로 몸뚱이는 다르지만 저 막내만은 자나 깨나 지아비와 함께 내 몸속에 있다는 말버릇처럼,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에서도 당신은 현구가 들어앉은 감옥 한 칸을 마음에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현구와 내가 스물아홉 나이 차이라, 작년에 남들이 말하는 그 험한 아홉수를 서로가 그런대로 넘긴다 싶더니..." 어머니가 맞은편 창밖을 바라보며 중언부언했다. 어머니가 셈하는 아홉수는 전래의 우리식 나이 계산법이었다. 얼마나 속울음을 지우셨는지 꺽센 가라앉은 그 목소리에서, 열렬한 사랑을 쏟는 만큼 반비례로 돌아오는 허탈감을 읽을 수 있었다. (p.260)

남과 북의 분단 문제를 주로 천착해온 작가 김원일은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 분단의 현실과 함께 산업화가 초래한 환경파괴 문제를 다룬다. 북한에서 월남한 작품 속 아버지에게 고향땅을 떠올리게 하는 도요새는 분단의 모순을 환기시켜주는 존재다. 반면 그의 두 아들에게 도요새는 보호받아야 할 희귀종이거나 돈벌이용 포획대상이다. 시대를 앞질러서 생태문제를 소설화했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과 함께 작가는 분단소설의 새 영역을 개척한다. 더불어 독자에게는 명상의 사회적 의미도 음미하게 한다.  -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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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 『시시포스의 신화』 I 고전5미닛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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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5.10.30까지 시청 가능합니다. 


📺  명상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 장동선의 궁금한 뇌 (11:18)


📺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헤르만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I 민음사 TV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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