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탈출을 꿈꿉니다. 지루한 회의에서, 끝없는 메신저 알림에서, 불안한 마음에서, 혹은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시간을 지우고, 또 누군가는 쇼핑에 몰두하거나 일에 파묻히며 잠시 그 불편함을 덮어두려 합니다. 그렇게 보면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은 현대인의 일상에 아주 흔한 감정입니다.
마이클 이스터는 『가짜 결핍』에서 우리는 실제로 부족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결핍을 만들어내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음식은 넘치지만,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정작 필요한 건 찾지 못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할수록 작은 불편에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결핍을 키우며 또 다른 소비와 도피로 채우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돌아보면 탈출은 달콤한 유혹이자 가장 손쉬운 선택입니다. 힘든 감정을 직면하기보다, 다른 무언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도망칠수록 불편은 도리어 커져 돌아오고,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집니다. 도망치면 잠깐은 가벼워지지만, 근본은 남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상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탈출하지 않고, 머무르고, 바라보는 것. 불안과 고독, 지루함과 초조함을 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훈련입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 처음엔 온갖 탈출 충동이 몰려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나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자리에 머물게 하고,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려 보면, 어느 순간 “지금 이대로도 괜찮구나”, “이 불편은 영원하지 않고 곧 가라앉겠구나” 하는 평안이 스며듭니다.
저는 『가짜 결핍』 속 문장 ―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가? 지루한 일상? 타인의 시선? 반복되는 업무? 아니면 삶이 던지는 숙제들? 결국 탈출은 잠시의 위안일 뿐, 불편을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만 또렷해졌습니다. 진짜 자유는 탈출 하겠다는 생각을 멈추는 데서 시작되는 듯합니다.
결국 우리는 불편과 불안과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다만, 함께 사는 법을 익힐 수는 있습니다. 삶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회복시키는 작은 습관을 쌓아 올리는 것이지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명상, 자연 속에서 산책,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사유를 깊게 하는 독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연결을 되살리는 순간들. 이런 행위들은 우리를 도피가 아닌 현실로 되돌려 세우고, 발밑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짜 결핍』에서 저자는 중독과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그 현상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며 반복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왜 도망치려 하는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똑바로 직면할 때, 탈출의 충동 대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자아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고통과 삶의 무의미함을 두고 잠시 자신을 마비시키는 거야. 그렇게 도망치는 것, 그렇게 잠시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은, 여인숙에 머무는 소몰이꾼이라도 곡주 몇 잔이나 발효된 야자술을 마시면 발견하게 되는 길이지. 그런 순간에는 그 사람도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삶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며,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단 말이네. 그 사람은 고작 곡주 몇 잔을 마시고서,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오랜 수련 끝에 육체에서 벗어나 머무는 무아 상태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거야. 사실이 그렇다네, 고빈다. 『싯다르타』 |
우리는 매일 탈출을 꿈꿉니다. 지루한 회의에서, 끝없는 메신저 알림에서, 불안한 마음에서, 혹은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시간을 지우고, 또 누군가는 쇼핑에 몰두하거나 일에 파묻히며 잠시 그 불편함을 덮어두려 합니다. 그렇게 보면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은 현대인의 일상에 아주 흔한 감정입니다.
마이클 이스터는 『가짜 결핍』에서 우리는 실제로 부족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결핍을 만들어내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음식은 넘치지만,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정작 필요한 건 찾지 못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할수록 작은 불편에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결핍을 키우며 또 다른 소비와 도피로 채우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돌아보면 탈출은 달콤한 유혹이자 가장 손쉬운 선택입니다. 힘든 감정을 직면하기보다, 다른 무언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도망칠수록 불편은 도리어 커져 돌아오고,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집니다. 도망치면 잠깐은 가벼워지지만, 근본은 남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상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탈출하지 않고, 머무르고, 바라보는 것. 불안과 고독, 지루함과 초조함을 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훈련입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 처음엔 온갖 탈출 충동이 몰려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나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자리에 머물게 하고,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려 보면, 어느 순간 “지금 이대로도 괜찮구나”, “이 불편은 영원하지 않고 곧 가라앉겠구나” 하는 평안이 스며듭니다.
저는 『가짜 결핍』 속 문장 ―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가? 지루한 일상? 타인의 시선? 반복되는 업무? 아니면 삶이 던지는 숙제들? 결국 탈출은 잠시의 위안일 뿐, 불편을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만 또렷해졌습니다. 진짜 자유는 탈출 하겠다는 생각을 멈추는 데서 시작되는 듯합니다.
결국 우리는 불편과 불안과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다만, 함께 사는 법을 익힐 수는 있습니다. 삶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회복시키는 작은 습관을 쌓아 올리는 것이지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명상, 자연 속에서 산책,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사유를 깊게 하는 독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연결을 되살리는 순간들. 이런 행위들은 우리를 도피가 아닌 현실로 되돌려 세우고, 발밑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짜 결핍』에서 저자는 중독과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그 현상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며 반복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왜 도망치려 하는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똑바로 직면할 때, 탈출의 충동 대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나요?
자아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고통과 삶의 무의미함을 두고 잠시 자신을 마비시키는 거야. 그렇게 도망치는 것, 그렇게 잠시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은, 여인숙에 머무는 소몰이꾼이라도 곡주 몇 잔이나 발효된 야자술을 마시면 발견하게 되는 길이지. 그런 순간에는 그 사람도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삶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며,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단 말이네. 그 사람은 고작 곡주 몇 잔을 마시고서,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오랜 수련 끝에 육체에서 벗어나 머무는 무아 상태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거야. 사실이 그렇다네, 고빈다. 『싯다르타』
결핍의 고리에 빠지는 원리
결핍의 고리는 오래전 생존을 위해 뇌가 발전시키 도박이다. 그 덕분에 인간은 불확실성에 직면하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거듭 시도했다.
그만두는 사람은 죽는 거다. (p.72)
계속 노름을 하고 계속 탕진하면서 부에 대한 자신의 경멸감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손실이 발생하면 평정심을 잃었고, 늑장부리는 채무자에 대해서 인내심을 잃었으며, 구걸하러 온 거지에게 온정을 베푸는 선량함도 잃었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는 기쁨도 잃었다. 한판 도박에 수천 금을 잃고도 웃어넘기던 그가, 장사에 더 지독해지고 더 옹졸해졌으며 때로는 밤에 돈에 대한 꿈까지 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흉측한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침실 벽에 걸린 거울에서 늙고 흉측하게 변한 자기 얼굴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구토감이 엄습해올 때마다, 계속 도피처를 찾고 새로운 도박판으로 도피했으며 쾌락과 술의 마취 속으로 도망쳤다. (p.98)
식물맹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한 가지 문제에 시달린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방해받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우리는 주변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의 항상 자신만의 거품 안에 갇힌 채 떠다닐 뿐이며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 거품을 뚫고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온다. (p.43)
마음의 감옥
유복자로 태어난 현구였기에 어머니는, 서로 몸뚱이는 다르지만 저 막내만은 자나 깨나 지아비와 함께 내 몸속에 있다는 말버릇처럼,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에서도 당신은 현구가 들어앉은 감옥 한 칸을 마음에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현구와 내가 스물아홉 나이 차이라, 작년에 남들이 말하는 그 험한 아홉수를 서로가 그런대로 넘긴다 싶더니..." 어머니가 맞은편 창밖을 바라보며 중언부언했다. 어머니가 셈하는 아홉수는 전래의 우리식 나이 계산법이었다. 얼마나 속울음을 지우셨는지 꺽센 가라앉은 그 목소리에서, 열렬한 사랑을 쏟는 만큼 반비례로 돌아오는 허탈감을 읽을 수 있었다. (p.260)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5.10.30까지 시청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