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매일이 새해인데,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한 허리를 뚝 잘라 새해라 이름 붙이고 기념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건 연말도, 연시도 마음 안이 내내 분주했던 탓일까요. 겨울의 가장 추운 시절이라는 소한(小寒, 1월 5일)에 접어들었습니다. 거리 위 맵고 시린 바람이 두터운 옷가지들로 무거워진 몸을 바삐 실내로 내몹니다. 그래서인지 칼바람에 정신은 버쩍 드는데, 몸은 부쩍 굼뜹니다. 묵은해를 돌아보며 새해 계획을 세우고 다짐도 해야 하는데, 몸은 겨울잠이 필요하다는 듯 자꾸 움츠러들고요. 제 게으름의 구차한 변명입니다. |
그래도 이 시절 이토록 추위가 몰아닥치는데, 나무들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속살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는데, 조금은 애쓰던 것을 멈췄다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
야심 차게 새해의 목표를 어떤 것으로 정했건, 결국 그것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아닐까요?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과 실천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이 참된 행복의 조건일까요? 행복은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사람이 적절히 감정적이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오히려 역동적으로 싸워가며 관계를 유지하는 게 행복한 삶에 보탬이 된다는 메시지로 행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해 준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행복 비결에 관한 일문일답을 통해 2026년 목표 리스트 일부를 조정해 보면 좋겠습니다. |
김경일 교수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Art Markman) 교수의 지도 아래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문제 해결, 창의성을 연구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지심리학 강의로 여러 차례 ‘최우수 강의’에 선정되었고,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등이 있으며, 『적정한 삶』을 통해 불안과 행복을 다루는 인지심리학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
- 한국인들은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뛰는 걸 잘 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 행복 연구자들에 따르면 ‘아난다마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행복감을 가져다주는데 한국인들에게 이게 적게 나온다. 동아시아권이 대부분 그렇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사는 것은 일차적으로 뇌 자체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아서다.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노동시간도 1등, 노는 시간도 1등이다. ‘너 뭐 해’ 물으면 ‘집에서 논다’라고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노는 것과 휴식을 구분하는 게 좋다. 휴식은 에너지를 저축하는 것이고, 노는 것은 창조와 연결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놀 때 노는 3분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는 것을 욕하는 경향이 있다. ‘자알 논다’, ‘놀고 자빠졌네’라고 말이다.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행복해진다.”
- 한국인들은 유달리 불안이 크다는데, 그것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되나?
“만약 내일이 시험이라면 불안해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하던 놀이나 게임 중단하고, 티브이도 그만 보고 시험공부를 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실제로 학점이 좋고, 일을 잘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보면 평균보다 약간 더 불안하다.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인 장애지만,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문제가 될 게 없다.”
- 이성보다 감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너 나한테 감정 있냐?’, ‘감정 조절이 안 돼?’라고 하는데, 감정이 부정적인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만약 감정 영역이 망가지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악수를 두고 만다. 이성만 발달하고, 감정이 망가진 유형이 소시오패스다. 감정이 없고 이성만 남으면 자녀도 죽일 수 있다. 계산해 보니 ‘내가 왜 애를 돌보느라 이 고생을 해야 하지’ 한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지적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위험하다. 결국 히틀러 같은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따라서 내 자녀가 오래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구구단을 빨리 외고, 영어를 빨리 읽느냐보다 감정이 제대로 발달했느냐를 중시해야 한다. 오직 지적 능력만 갖춘 사람으로 키우면,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된다. 적절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 감정과 정서, 어떨 때가 문제인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은 게 가장 문제다. 감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은 우린 감정적이다. 자기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 20대가 ‘내가 저 차를 정말 좋아할까, 살까 말까?’ ‘ 내가 저 여자를, 저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아닐까?’, 자기감정을 몰라서 답답하다. 자기감정을 아는 능력이 ‘메타 인지’다. 심리학이 다음에 갈 영역이다. 자기가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짬뽕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중국집에서 짬짜면을 내놓고, 탕수육까지 삼등분한 메뉴를 내놓겠는가.”
- ‘오늘 점심때 뭘 먹지’ ‘오늘 누구를 만나지’ ‘주말에 뭐 하지’, ‘어떤 영화를 볼까’ 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며 결정을 못 내리는 것도 이성과 논리 탓이 아니라 정서나 감정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가?
“결정을 내릴 때는 느낌이 동반되어야 한다. ‘점심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는 ‘무엇을 먹고 나서 더 만족할까’가 명확해질 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게 명확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도 쉽고, 스트레스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녁에 시원하게 ‘치맥’을 할 생각을 하며 행복해지면 스트레스받는 일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도구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게 정서다. 오늘도 무덥고 일이 많아 지쳤는데 아내에게 ‘돼지고기 고추장에 볶으면 맛있겠다. 소주도 차갑게 얼려줘’라고 하고 나니 저녁에 그것을 먹을 생각에 없던 힘이 생겼다.”
- 심리적 아픔도 몸을 다친 것과 같아서 사별, 이혼이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2011년부터 심리학 연구에서 관찰된다.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 그가 휘두른 칼에 맞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럴 때 정신력으로만 이기려고 하는 건 오만이다. 몸을 다친 것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맺힌 것을 풀어 주면서 보살피라는 이야기다. 한국인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아서 정신력에 대한 환상이 많다. 그 결정판이 스포츠 중계 때 나온다. 한국 선수들이 후반전에 지쳤을 때 ‘이제 정신력으로 싸우라’고 한다. 대부분 정신력과 체력은 거의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바둑 스승이 ‘네가 막판에 대국을 왜 망치는 줄 알아.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라고 하지 않는가. 막판에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의지력이 있긴 하지만. 매일 한일전처럼 싸우다간 죽는다.” |
-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엔 애착이 필요하다. 애정보다 더 위가 애착이다. 교사가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겠다는 것은 실은 애착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애정은 이성 간의 성적인 측면이자 흥분성이라면 애착은 인간 대 인간으로 가지는, 가까이 묶이고 싶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 숭고한 욕구다. 애착이 만들어진 관계는 서로 싸우지 않고, 많은 것을 거저 줄 수 있다. 누군가 ‘부부간에 애정이 변했다’고 하면, ‘이젠 애착을 가지고 살아라’고 권한다. 부부는 2년간의 애정에 속아 50년의 애착으로 살아간다. 한국인은 애착 형성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잘 돼 있다. 서양 선교사들이 15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놀란 것이 부모도 아닌 조부모까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늘 안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린 안아주고 업어주는 애착 문화다.”
-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식 간, 어느 나라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게 한국인들 아닌가?
“너무 애착이 잘 형성돼 있어서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는 애착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춘기는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니, 잘 붙은 애착을 떼어 내려면 얼마나 난리를 쳐야겠나.”
- 이기적이고 힘센 종이 멸종하는 반면 오래 살아남은 생물종과 공동체의 특성을 이타성으로 보았는데, 실제 그런가?
“전쟁에서 이긴 쪽은 적군의 왕과 대장부터 죽인다. 서로 보듬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고, 타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민초들의 자손들이 더 오래 살아 남았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 아니라, 적정하게 경쟁하고, 적정하게 취하고, 적정하게 나눠준다. 내 아이가 자기 것을 다 퍼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안 된다. 그건 이타주의가 아니다. 이타주의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아이들은 꼴찌들을 가르쳐 주면서 막연했던 지식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이타주의는 역량이다. 기업들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시한다.”
- 창의성도 버릇없고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있다고 한 이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우연히 나올 수 있지만, 저 혼자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훈수도 필요하고 협동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부적응적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단 한 두번의 ‘창의’는 가능하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심리실험에서도 같은 문제를 내주고, ‘창조적으로 해결하라’고 했을 때보다 ‘친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했을 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덮였을 때도 봉사에 나선 국민이 모두 과학자가 된 듯 창의적으로 기름을 걷어내지 않았나.”
- 대부분이 ‘돈이면 행복할 수 있다’며 ‘돈돈돈’ 하는데, 심리연구에선 어떤가?
“무일푼이었다가 연 소득이 만불이 되면 당연히 행복감이 상승한다. 행복감은 수입이 늘수록 상승하는데, 그 분기점이 7만~8만달러 정도다. 그때부터는 수익이 늘어난다고 행복감도 그만큼 늘지는 않는다. 연봉 8천만원에 이르면 이제 돈이 아닌 다른 요인이 얹어져야 행복감이 상승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의 상한선은 연봉 8천만원쯤이다.”
- 같이 로또에 당첨되고도 불행해지는 사람과 행복해지는 사람의 차이는?
“돈을 버는 것만 목표로 삼고,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이 없으면 큰돈이 생겨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 돈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이 돈만 모은 사람은 이 돈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돈이 형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지만 부잣집 자식들은 ‘남을 믿어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 남을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시리스트를 작성해두는 게 좋다. 목적이 없으면 돈이 생기고 건물주가 되어도 갈수록 삶이 허망해진다. 돈은 소원을 풀기 위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
새해에는 무엇을 더해야 할까보다, 현재 주어진 이대로 그대로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행복을 위한 또 하나 비법으로 행복의 척도를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바꾸라고 김경일 교수는 덧붙여 말합니다. “‘원트’(want)와 ‘라이크’(like)가 거의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앞세운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둘이 다른 경우가 많다. 너무 원했지만 실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워서 비싼 값을 주고 산 옷과 신발, 가방은 사놓고 보면 정작 좋아한 게 아니어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남들이 가진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 |
새해를 열며 선택한 음악이 있으시나요? 창작자와 청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 시장에 대항하듯 AI는 대량 생산으로 창작물들을 쏟아내, 음악을 선택하는 것도 적잖은 피로감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음악을 찾게 되고, 창문을 열어젖혀 자연 소리에 귀를 열어두게 됩니다. |
한 음악가가 있습니다. 도심지에서 음악과 영상·미술·퍼포먼스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업을 하던 전위적인 예술가는 평가받고 어디론가 도달해야만 존재 의미를 갖는 음악과 자신의 삶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결국 도시를 떠나 외딴 산간 지역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 같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하루의 리듬을 만들고, 손수 낡은 집을 고쳐 지내며, ‘일’이나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는 몸짓으로서 음악을 만듭니다. 그 음악에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날의 자연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그리고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의미 없이 움직이며 남긴 기록들이 담겨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하루의 장면들을 담은 "Masakatsu Takagi" 의 Marginalia 프로젝트는 어느새 211번째 넘버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가장 최신 발매 곡인 <Marginalia #211>을 감상하며 잠시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시면 어떨까, 하고 추천을 드립니다. |
죽어라 살지 않는다고 우물쭈물 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생각과 사회의 이끄는 리듬에서 벗어나 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리듬대로 하루의 한 부분씩 채워가다 보면, 한 겹 더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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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단법인 止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2 SK관훈빌딩 11층 수신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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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매일이 새해인데,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한 허리를 뚝 잘라 새해라 이름 붙이고 기념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건 연말도, 연시도 마음 안이 내내 분주했던 탓일까요. 겨울의 가장 추운 시절이라는 소한(小寒, 1월 5일)에 접어들었습니다. 거리 위 맵고 시린 바람이 두터운 옷가지들로 무거워진 몸을 바삐 실내로 내몹니다. 그래서인지 칼바람에 정신은 버쩍 드는데, 몸은 부쩍 굼뜹니다. 묵은해를 돌아보며 새해 계획을 세우고 다짐도 해야 하는데, 몸은 겨울잠이 필요하다는 듯 자꾸 움츠러들고요. 제 게으름의 구차한 변명입니다.
그래도 이 시절 이토록 추위가 몰아닥치는데, 나무들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속살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는데, 조금은 애쓰던 것을 멈췄다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야심 차게 새해의 목표를 어떤 것으로 정했건, 결국 그것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아닐까요?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과 실천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이 참된 행복의 조건일까요? 행복은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사람이 적절히 감정적이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오히려 역동적으로 싸워가며 관계를 유지하는 게 행복한 삶에 보탬이 된다는 메시지로 행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해 준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행복 비결에 관한 일문일답을 통해 2026년 목표 리스트 일부를 조정해 보면 좋겠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Art Markman) 교수의 지도 아래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문제 해결, 창의성을 연구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지심리학 강의로 여러 차례 ‘최우수 강의’에 선정되었고,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등이 있으며, 『적정한 삶』을 통해 불안과 행복을 다루는 인지심리학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 한국인들은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뛰는 걸 잘 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 행복 연구자들에 따르면 ‘아난다마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행복감을 가져다주는데 한국인들에게 이게 적게 나온다. 동아시아권이 대부분 그렇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사는 것은 일차적으로 뇌 자체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아서다.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노동시간도 1등, 노는 시간도 1등이다. ‘너 뭐 해’ 물으면 ‘집에서 논다’라고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노는 것과 휴식을 구분하는 게 좋다. 휴식은 에너지를 저축하는 것이고, 노는 것은 창조와 연결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놀 때 노는 3분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는 것을 욕하는 경향이 있다. ‘자알 논다’, ‘놀고 자빠졌네’라고 말이다.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행복해진다.”
- 한국인들은 유달리 불안이 크다는데, 그것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되나?
“만약 내일이 시험이라면 불안해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하던 놀이나 게임 중단하고, 티브이도 그만 보고 시험공부를 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실제로 학점이 좋고, 일을 잘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보면 평균보다 약간 더 불안하다.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인 장애지만,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문제가 될 게 없다.”
- 이성보다 감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너 나한테 감정 있냐?’, ‘감정 조절이 안 돼?’라고 하는데, 감정이 부정적인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만약 감정 영역이 망가지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악수를 두고 만다. 이성만 발달하고, 감정이 망가진 유형이 소시오패스다. 감정이 없고 이성만 남으면 자녀도 죽일 수 있다. 계산해 보니 ‘내가 왜 애를 돌보느라 이 고생을 해야 하지’ 한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지적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위험하다. 결국 히틀러 같은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따라서 내 자녀가 오래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구구단을 빨리 외고, 영어를 빨리 읽느냐보다 감정이 제대로 발달했느냐를 중시해야 한다. 오직 지적 능력만 갖춘 사람으로 키우면,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된다. 적절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 감정과 정서, 어떨 때가 문제인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은 게 가장 문제다. 감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은 우린 감정적이다. 자기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 20대가 ‘내가 저 차를 정말 좋아할까, 살까 말까?’ ‘ 내가 저 여자를, 저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아닐까?’, 자기감정을 몰라서 답답하다. 자기감정을 아는 능력이 ‘메타 인지’다. 심리학이 다음에 갈 영역이다. 자기가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짬뽕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중국집에서 짬짜면을 내놓고, 탕수육까지 삼등분한 메뉴를 내놓겠는가.”
- ‘오늘 점심때 뭘 먹지’ ‘오늘 누구를 만나지’ ‘주말에 뭐 하지’, ‘어떤 영화를 볼까’ 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며 결정을 못 내리는 것도 이성과 논리 탓이 아니라 정서나 감정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가?
“결정을 내릴 때는 느낌이 동반되어야 한다. ‘점심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는 ‘무엇을 먹고 나서 더 만족할까’가 명확해질 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게 명확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도 쉽고, 스트레스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녁에 시원하게 ‘치맥’을 할 생각을 하며 행복해지면 스트레스받는 일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도구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게 정서다. 오늘도 무덥고 일이 많아 지쳤는데 아내에게 ‘돼지고기 고추장에 볶으면 맛있겠다. 소주도 차갑게 얼려줘’라고 하고 나니 저녁에 그것을 먹을 생각에 없던 힘이 생겼다.”
- 심리적 아픔도 몸을 다친 것과 같아서 사별, 이혼이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2011년부터 심리학 연구에서 관찰된다.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 그가 휘두른 칼에 맞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럴 때 정신력으로만 이기려고 하는 건 오만이다. 몸을 다친 것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맺힌 것을 풀어 주면서 보살피라는 이야기다. 한국인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아서 정신력에 대한 환상이 많다. 그 결정판이 스포츠 중계 때 나온다. 한국 선수들이 후반전에 지쳤을 때 ‘이제 정신력으로 싸우라’고 한다. 대부분 정신력과 체력은 거의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바둑 스승이 ‘네가 막판에 대국을 왜 망치는 줄 알아.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라고 하지 않는가. 막판에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의지력이 있긴 하지만. 매일 한일전처럼 싸우다간 죽는다.”
-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엔 애착이 필요하다. 애정보다 더 위가 애착이다. 교사가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겠다는 것은 실은 애착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애정은 이성 간의 성적인 측면이자 흥분성이라면 애착은 인간 대 인간으로 가지는, 가까이 묶이고 싶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 숭고한 욕구다. 애착이 만들어진 관계는 서로 싸우지 않고, 많은 것을 거저 줄 수 있다. 누군가 ‘부부간에 애정이 변했다’고 하면, ‘이젠 애착을 가지고 살아라’고 권한다. 부부는 2년간의 애정에 속아 50년의 애착으로 살아간다. 한국인은 애착 형성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잘 돼 있다. 서양 선교사들이 15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놀란 것이 부모도 아닌 조부모까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늘 안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린 안아주고 업어주는 애착 문화다.”
-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식 간, 어느 나라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게 한국인들 아닌가?
“너무 애착이 잘 형성돼 있어서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는 애착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춘기는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니, 잘 붙은 애착을 떼어 내려면 얼마나 난리를 쳐야겠나.”
- 이기적이고 힘센 종이 멸종하는 반면 오래 살아남은 생물종과 공동체의 특성을 이타성으로 보았는데, 실제 그런가?
“전쟁에서 이긴 쪽은 적군의 왕과 대장부터 죽인다. 서로 보듬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고, 타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민초들의 자손들이 더 오래 살아 남았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 아니라, 적정하게 경쟁하고, 적정하게 취하고, 적정하게 나눠준다. 내 아이가 자기 것을 다 퍼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안 된다. 그건 이타주의가 아니다. 이타주의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아이들은 꼴찌들을 가르쳐 주면서 막연했던 지식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이타주의는 역량이다. 기업들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시한다.”
- 창의성도 버릇없고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있다고 한 이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우연히 나올 수 있지만, 저 혼자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훈수도 필요하고 협동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부적응적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단 한 두번의 ‘창의’는 가능하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심리실험에서도 같은 문제를 내주고, ‘창조적으로 해결하라’고 했을 때보다 ‘친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했을 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덮였을 때도 봉사에 나선 국민이 모두 과학자가 된 듯 창의적으로 기름을 걷어내지 않았나.”
- 대부분이 ‘돈이면 행복할 수 있다’며 ‘돈돈돈’ 하는데, 심리연구에선 어떤가?
“무일푼이었다가 연 소득이 만불이 되면 당연히 행복감이 상승한다. 행복감은 수입이 늘수록 상승하는데, 그 분기점이 7만~8만달러 정도다. 그때부터는 수익이 늘어난다고 행복감도 그만큼 늘지는 않는다. 연봉 8천만원에 이르면 이제 돈이 아닌 다른 요인이 얹어져야 행복감이 상승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의 상한선은 연봉 8천만원쯤이다.”
- 같이 로또에 당첨되고도 불행해지는 사람과 행복해지는 사람의 차이는?
“돈을 버는 것만 목표로 삼고,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이 없으면 큰돈이 생겨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 돈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이 돈만 모은 사람은 이 돈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돈이 형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지만 부잣집 자식들은 ‘남을 믿어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 남을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시리스트를 작성해두는 게 좋다. 목적이 없으면 돈이 생기고 건물주가 되어도 갈수록 삶이 허망해진다. 돈은 소원을 풀기 위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새해에는 무엇을 더해야 할까보다, 현재 주어진 이대로 그대로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행복을 위한 또 하나 비법으로 행복의 척도를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바꾸라고 김경일 교수는 덧붙여 말합니다. “‘원트’(want)와 ‘라이크’(like)가 거의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앞세운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둘이 다른 경우가 많다. 너무 원했지만 실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워서 비싼 값을 주고 산 옷과 신발, 가방은 사놓고 보면 정작 좋아한 게 아니어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남들이 가진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
새해를 열며 선택한 음악이 있으시나요? 창작자와 청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 시장에 대항하듯 AI는 대량 생산으로 창작물들을 쏟아내, 음악을 선택하는 것도 적잖은 피로감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음악을 찾게 되고, 창문을 열어젖혀 자연 소리에 귀를 열어두게 됩니다.
<Marginalia #211 · Masakatsu Takagi>
한 음악가가 있습니다. 도심지에서 음악과 영상·미술·퍼포먼스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업을 하던 전위적인 예술가는 평가받고 어디론가 도달해야만 존재 의미를 갖는 음악과 자신의 삶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결국 도시를 떠나 외딴 산간 지역의 작은 마을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 같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하루의 리듬을 만들고, 손수 낡은 집을 고쳐 지내며, ‘일’이나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는 몸짓으로서 음악을 만듭니다. 그 음악에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날의 자연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그리고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의미 없이 움직이며 남긴 기록들이 담겨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하루의 장면들을 담은 "Masakatsu Takagi" 의 Marginalia 프로젝트는 어느새 211번째 넘버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가장 최신 발매 곡인 <Marginalia #211>을 감상하며 잠시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시면 어떨까, 하고 추천을 드립니다.
죽어라 살지 않는다고 우물쭈물 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생각과 사회의 이끄는 리듬에서 벗어나 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리듬대로 하루의 한 부분씩 채워가다 보면, 한 겹 더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