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51] 나는 욕망한다. 당신의 욕망을.

이치훈
2026-08-05
조회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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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가 이런 거였군요. 매일 수십 년 전, 백여 년 전의 기록까지 무심히 갈아치우며, 한반도는 이례적인 극서(極暑)로 들끓고 있습니다. 엊그제 아랫지방에서, 41도라 불리는, 처음 느껴본 무겁고도 따가운, 비현실적인 열기에 잠시 헛웃음이 세어 나오기도 했답니다. 내일하고 모레면 입추(立秋, 8월 7일)인데요. 달력이 가을에 들어선다고 이 더위가 한풀 꺾여 줄까 모르겠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더위가 단순히 한반도 여름의 유난한 기승이 아니라 전 지구적 이상 기후의 한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유럽 대륙은 사상 최악의 폭염과 대형 산불로 수백 명의 생명을 잃었고, 만년설로 덮여 있던 알프스의 빙하는 점점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의 경고가 어느새 현재의 우리 일상에 닥친 위기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이 끔찍한 무더위가 안겨주는 것은 단순한 '불쾌감'만이 아닙니다. 두려움, 걱정,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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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될 때면 좋았던 시절의 기억을 꺼내와 추억하며 버티라는 말이 불쑥 떠올라, 시원한 겨울의 한 풍경을 남겨놓습니다.


어릴 적, 어른의 세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어른은 ‘자유로운 존재’로 보이지 않았었나요? 키가 다 크면, 법적 성인이 되어 주민증을 발급받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그동안 부모님과 선생님이 금지해 온 것들을 죄다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잔뜩 기대에 찼던 기억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테지요.


어른이 된 지금, 어떠신가요?

자유로우신가요?

외부의 기대, 사회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자기다움을 지키고 계시나요?


오늘은 최은수 심리학 교수의 칼럼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을 통해, 어른이 된 우리의 삶의 ‘자유로움’에 대해 짚어보고 탐구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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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 책임집니다. 직장도 대체로 스스로 선택했고, 관계도 대부분 우리의 결정에 기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택들로부터 우리는 ‘자유’를 느끼긴 쉽지 않습니다. 내가 결정한 일이고, 내가 만난 사람들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항상 '나의 진정한 욕망’에 따른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차드 라이언(Richard Ryan)은 '자기결정이론'을 통해 이를 구분합니다. 행위 자체가 즐겁고 만족감을 주기에 그것을 선택하는 경우를 '내재적 동기'라고 부른다면,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써 그 행위를 할 때 작동하는 것을 '외재적 동기’라 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직업을 택하거나, 사회적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관계를 맺는다면, 외부에 존재하는 보상이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외재적 동기에 의존할 때, 우리는 자신을 외부의 통제 아래에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섬세한 문제가 있습니다. 명백히 외부의 강압만이 우리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규범을 내면화합니다. '마땅히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은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내 안의 목소리가 되어버립니다. 좋은 성적, 명문대, 대기업 입사, 외모 관리… 이런 목표들이 많은 사람의 인생 설계에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은,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기보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그것을 가치 있다고 판단해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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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거장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흥미로운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나의 욕망보다도 부모, 친구,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욕망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사실은 본연의 욕망에서 기인한다기보다 때로는 나를 둘러싼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사회가 원하는 것을 내재화할 때,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외적 보상을 넘어선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극도로 사회적인 동물로서,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통해서만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느낍니다. 사회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의 '사회적 계기판 이론'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이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수용되고 있는가를 감지하는 일종의 바로미터입니다. 사회가 부여하는 과제에서, 성취는 타인의 승인을 가져오고, 이는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받을 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합니다.


역으로 당신의 정체성과 연결된 영역에서의 실패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깊은 불안감을 낳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승인의 내적 보상은 매우 강력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종종 성취의 강력한 연료가 됩니다. 그러나, 성취 여부에 따라 변하는 '조건부 자존감'을 지키려는 동기는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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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20세기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흥미로운 진단을 내렸습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유와 동반되는 책임이 가져오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오히려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자유란 항상 우리의 손 밖에 있는 파랑새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심리학자 미할리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발견한 '플로우(Flow)' 상태—행위 자체에 완전히 몰입되어 시간을 잊고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상태—는 정확히 내재적 동기가 가장 활발할 때 나타납니다. 그 순간, 외부의 평가와 보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외재적 동기가 강한 사람들은 덜 건강하고, 덜 만족스러우며, 삶의 의미를 덜 느낍니다. 자기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학적 관찰이 아닙니다. 신경과학 연구들은 내재적 동기가 활성화될 때 뇌의 보상 체계가 더욱 강렬하게 반응함을 보여줍니다. 즉,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할 때, 우리의 뇌는 그것을 가장 깊은 수준에서 인식하고 응답합니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동기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이 정말 나다운 선택일까?’ 이러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외부로부터 통제된 삶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완전한 자유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동기를 분명히 알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려는 노력 자체가 바로 ‘자유’의 한 과정 아닐까요.


잠시 멈추고, 묻는 것.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질문 하나가 진정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다.


위 글은 2026년 5월 11일 발행된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최은수 교수)" 칼럼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jigwan.org/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1227191&t=board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4 Op 131 in C♯minor - Alban Berg Quartet>

18세기 고전주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게는 일종의 '공통 규칙'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모두 따라야 할 음악적 형식이 있었고 그것의 창작에서 가장 중요했습니다. 어느 천재적인 음악가도 이 형식의 틀 안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들은 작곡가별로 분명히 다르면서도 음악적 형식과 양식 면에서 서로 비슷한 느낌을 쉽게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클래식 음악은 형식보다는 개인의 표현이 중요해졌고,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기만의 음악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곡마다 작곡가 스스로가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창작되었습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음악가입니다. 초기 교향곡들은 여전히 고전주의의 형식을 따랐지만, 특히 1802년 이후 그의 음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1802년, 베토벤은 자신의 청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절망과 외부 세계로부터의 단절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청중을 의식하는 대신, 사회적 기대와 시대의 유행이나 취향을 고려하는 대신, 순수하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후기 현악사중주, 특히 [String Quartet No.14 in C-sharp minor Op.131]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 형식의 틀을 완전히 깨뜨렸지만 그것은 '형식의 무시’가 아닌, 오히려 자신만의 내면의 논리, 자신만의 음악적 필요성에 따른 새로운 형식의 재창조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의 ‘자유’겠지요. 사회가 정한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 외부의 시선과 통제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몰입하는 것.


베토벤 음악은 왠지 완벽하리만치 정교하고 엄중해 늘 긴장하고 듣게 되는데요, 이 곡은 가만히 감상하다 보면 그 긴장이 하나둘 해체되며 감각들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답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듯, 어쩌면 타인의 자유로움에 우리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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