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38] 인공지능은 모를 우리네 미시사微視史

이치훈
2026-05-06
조회수 45

51938_1667268674.jpg

오월의 출발과 함께 이어진 연휴가 그치고 나니, 어느새 여름이 도착해 있습니다.(입하, 立夏, 5월 5일). 수차례 봄비가, 매섭게 차던 사월의 바람이 지나고 이제 대지는 여름의 햇살에 데워져 훈훈해집니다. 초목은 더욱 활기를 띠며 무성해지고요.

51938_3373015_1777995405937791330.jpg

오월은 유난히 기념하며 감사해하는 날이 많은 달입니다. 근로자의 날(5월 1일),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 성년의 날(5월 18일), 부부의 날(5월 21일), 석가탄신일(5월 24일).


감사한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더불어 그것의 조건이 된 타인 또는 외부 대상까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입니다. 푸르른 오월은, 내내 '감사'가 끊이지 않는 달이었음 좋겠습니다.

역사는 누가 쓰는 걸까요? 

교과서에 실린 왕과 장군의 이야기만이 역사일까요? 전통 시대에 문헌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은 아마도 글을 아는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을 텐데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양반은 전체 인구의 3% 정도였다고 합니다.

51938_3373015_1777964299302158193.jpg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1~3%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인 셈입니다. 나머지인 대부분의 삶은 어디로 갔을까요? 오늘은 국립경북대 태지호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한 그 97%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51938_3373015_1777967482430289313.jpg

<태지호 국립경국대 역사학과 교수>

Q. 역사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성립한 지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A. “그렇습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란 것 자체는 훨씬 오래됐죠. 중국의 '사기(史記)'도 있고, 유럽에서는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그것이 대학에서 독자적 학문 범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독일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 이후입니다. 그전에는 학문이 오늘날처럼 세분화되지 않았어요. 서구의 경우 가장 중요한 학문은 신학이었고, 수도사들이 수사학, 성경 해석, 수학 등을 함께 공부했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사이에 분과 학문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역사는 학문적 위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Q. 그렇다면 역사학이 '과학'의 지위를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흐름입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인간의 삶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고, 역사학에서는 랑케가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정립했습니다. '증거가 있는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 즉 문헌과 기록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이 실증주의 사관은 지금도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남아 있습니다."


Q. 그런데 그 실증주의에 한계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A.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으로서의 오류 가능성이고, 둘째는 제한된 기록에 근거한 제한된 역사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 시대에 문헌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겠어요. 글을 아는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왕실의 기록, 높은 신분의 기록, 국가·정치·거대 사건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51938_3373015_1777968780742832038.jpg

Q. 미시사의 방법론은 어떻게 다릅니까.

A. "핵심은 구술사(口述史)입니다. 미시사는 개인에 집중합니다. 개인의 삶, 개인의 경험, 나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입니다. 그 자료는 공적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일 수밖에 없고, 그 기억을 끌어내는 방법이 구술입니다. 거시사의 주체가 국가·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라면, 미시사의 주체는 특정 개인이고, 우리 가족이고, 우리 마을이고, 커뮤니티입니다. 예로 든다면 6·25전쟁을 이야기할 때 거시사는 '한국군은 어떻게 싸웠는가'를 말한다면, 미시사는 '그 전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겪었는가'를 묻는 겁니다.”


Q. 인공지능(AI) 이야기를 해볼까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미시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A. "인간의 삶 자체입니다. AI의 원리는 결국 수학적 알고리즘이고, 알고리즘은 평균값에 기반합니다. 도수가 가장 높은 값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평균에서 벗어난 개인들, 즉 양극단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알고리즘은 사실상 무시합니다.


인간의 삶은 개인의 자유의지가 있고,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탕을 예로 들어볼까요. 사탕의 당도나 성분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더 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다고 하고, 딱딱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은 개인 간 차이가 너무나 크고,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평균값 하나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의 한계입니다."

51938_3373015_1777968775498873531.jpg

Q. 최근 동해안 어촌 구술 조사를 하고 계신다고요.

A. "3년 차입니다. 포항, 영도, 울진, 경주, 울릉도 등 경북 동해안 어촌들을 해마다 조사하고 있습니다. 농촌인구가 사라지듯이, 고기 잡을 사람이 없어서 어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Q.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A."개인들의 삶이 거시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가 생생하게 보입니다. 같은 어민이라도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어떤 마을은 항구가 생기면서 개발이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펜션도 생기고, 노후도 보장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몇 km 떨어진 이웃 마을은 항만 때문에 어장이 폐쇄되고, 개발 지역도 아니라서 완전한 소멸 지역이 돼버립니다.


똑같은 어민들인데, 국가정책 하나가 어떻게 개인들의 삶을 갈라놓는지가 눈에 보이는 거죠. 1980년대는 이랬고, 90년대에 이게 바뀌었고, 2000년대에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들, 배가 몇 척이었고, 어장이 어떠했고. 그야말로 미시사 자체입니다. AI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데이터가 없습니다. 있다면 인구통계학적 정보나 공식 통계, 논문, 인터뷰 기사 정도겠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은 데이터에 없습니다.”

위 글은 2026년 4월 28일 발행된 "기억을 묻고, 삶을 캐는 일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태지호 국립경국대 역사학과 교수)" ‘AI 시대 다시 묻는 인문학’은 재단법인 지관(止觀)과 ‘신동아’가 공동 기획한 시리즈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jigwan.org/28/?bmode=view&idx=171049268

태지호 교수가 동해안 어촌 마을에서 노인들의 구술을 채집하듯아이슬란드 작곡가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 사라진 탄광 마을의 기억을 음악으로 기록했습니다.

aMFRcX2al1k-thumb.png

<Johann Johannsson - The Cause Of Labour Is The Hope Of The World (The Miners' Hymns)>

2010 미국 실험영화 감독  모리슨(Bill Morrison)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The Miners' Hymns> 영국 북동부 더럼(Durham) 탄광 공동체의 역사와 쇠락을 다룹니다. 1944 더럼에는 100,000명의 광부가 230 탄광에서 일했습니다하지만 1960-70년대 대규모 폐쇄가 시작됐고, 1984 마거릿 대처 정부가 탄광 폐쇄 정책을 발표하자 광부들은 1년간 파업에 나섰습니다. 수많은 더럼 광부들은 1 내내 급여를 받지 못했고, 탄광 마을들은 대량 실업과 공동체 붕괴를 겪었습니다.


거의 대사 없이 기록 영상과 음악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은거시사가 다루지 못한 개별 광부들과  가족의 삶을 담아냅니다파업  끼니를 거르던 아이들배급소를 운영하던 아내들결국 다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광부들공식 기록에는 남지 않은 97% 이야기입니다.


"The Cause of Labour is the Hope of the World(노동의 대의는 세계의 희망)"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곡으로, 곡명은 노동조합 깃발에 적힌 슬로건에서 가져왔습니다느리게 쌓여가는 오르간 선율 위로 금관악기들이 하나둘 합류하며점차 장엄함과 숭고함을 만들어냅니다. 2010 더럼 대성당(Durham Cathedral)에서 녹음된  곡의 16인조 브라스 앙상블에는실제로  지역 탄광에서 평생을 일했던 광부들이 악기를 들고 참여했습니다자신들이 살아낸 역사를 직접 연주한 것입니다여름의 시작과 함께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음악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시대에 인문학의 힘은 무엇일까요? 태지호 교수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유를 교란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정치적인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과학기술적인 문제든 간에, 그 당연함을 흐트러뜨리는 것. 짚어보고, 질문을 던지고, 비틀어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고 인문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이기도 합니다. 내가 옳다고만 할 수 없고, 내 생각이 지금 어디서부터 왔는지 돌아보는 것, 결국 질문하는 힘이죠. '이게 잘못된 게 아니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는 물음입니다."

51938_2934029_1754399256338870509.png
구독 링크 공유하기! 👉공유하기
지난 호가 궁금하다면? 👉보러가기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homepage2-snsC.pngfacebook-snsC.pnginstagram-snsC.pngyoutube-snsC.pnghomepage-snsC.pngchannel-snsC.png
재단법인 止觀
인문 공간 지관서가를 기획합니다.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을 발행합니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2 SK관훈빌딩 11층
수신거부

한 주간 성찰해 볼 만한 삶의 작은 물음들을 책, 강연, 다큐, 영화, 기사 등 다양한 인문 콘텐츠를 통해 살펴보는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과 함께하는 순간, 당신의 삶이 더욱 깊이 있고 단단해질 거예요.^^ ▶아카이빙 보기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30분" 가장 먼저 위클리 지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