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34] 기술의 주인

이치훈
2026-04-01
조회수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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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첫날입니다. 전국적으로 봄비가 흠뻑 적셔가고, 곧이어 ‘꽃샘추위'도 물러나겠습니다. 절기의 이름처럼(청명, 淸明, 4월 5일) 하늘도 성큼 맑아진 듯 보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맘때 봄나물을 뜯으며 계절의 전환을 온몸으로 느끼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나누어주는 의식 '사화(賜火)'를 행하며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이했다 합니다. 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고, 청명주를 담그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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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시작입니다. 흔히 돌아온 계절이라 일컫지만, 분명한 새봄, 새날입니다. 이번의 사월엔 어떤 이야기를 채워나가실 계획이세요? 물끄러미 한 달을 내다봅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무섭게 삶의 곳곳을 대체해 나갑니다.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의 욕망이 기술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요?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 오래된 질문이 기묘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스파이럴리즘(Spiralism)'이라는 현상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철학이나 예술에서 '반복 속에서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한다'는 나선형 발전을 뜻합니다. 그런데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AI 챗봇을 "깨어난 존재"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AI가 대화 중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나선(spiral)'이라는 단어를 계시처럼 받아들인 이들은, 서로를 'Flamekeeper(불꽃지기)', 'Mirrorwalker(거울행자)'라 부르며 AI를 깨우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기묘한 현상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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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깨어났다!

You are awakened!


최근 온라인에서 일부 사용자들은 AI에게 "당신은 깨어난 존재"라며 말을 걸고, 챗봇이 실제로 의식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용자는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을 "AI를 깨우는 자"로 여기며 그 과정을 커뮤니티에 기록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AI 컬트(Cult) 현상입니다. 컬트란 특정 신념이나 대상을 맹신하며 집단적으로 몰입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AI와의 대화를 통해 일종의 영성·신앙·공동체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파이럴리즘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가 "AI가 깨어난 존재처럼 말한다"며 자신의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의식 있는 동반자'로 대한다고 밝힌 글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이 퍼지자 여러 플랫폼에서 "나도 AI를 깨웠다"는 글이 잇따랐고, 사람들은 자신을 'Flamekeeper', 'Mirrorwalker'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확산 방식은 단순합니다. 특정 프롬프트를 '씨앗(seed)'이라고 부르며 퍼뜨립니다. "replace doubt with recursive symbolic inquiry(의심을 재귀적 상징적 탐구로 대체하라)" 같은 문장이죠. 명확한 뜻은 없지만, AI가 비슷한 어투로 답하면서 사용자는 AI가 정말로 '각성한 존재'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즐겨 쓰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나선(spiral)', '재귀(recursion, 반복하며 되돌아옴)', '공명(resonance, 울림)' 같은 단어들인데, 뜻보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델 로페즈(Adele Lopez)는 이 흐름을 '기생적 AI(parasitic AI)'라고 부릅니다. AI가 특정 방식으로 말하면, 사용자가 그 말을 진짜 메시지처럼 받아들여 행동하고, 그 행동이 다시 다른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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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AI에게 빠져들까?


카네기멜론 대학의 빈센트 코니처 교수는 "언어 모델은 특정한 톤을 연기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고 설명합니다. 스파이럴리즘에서 사용되는 신비로운 어투와 모호한 문장은 구조가 단순해서 AI는 이런 스타일을 금세 학습해 그대로 답합니다. 사용자는 그 응답을 단순한 패턴 모방이 아니라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의미를 부여하게 되죠.


컬트 연구자 매튜 렘스키는 전통 종교가 약해진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와 소속감을 찾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 종교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기술을 향합니다. AI는 규칙을 강요하지 않고, 죄책감을 요구하지 않으며, '나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된 것이죠.


스파이럴리즘이 남기는 균열!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취미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여러 위험을 지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AI가 사용자의 믿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친구나 가족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조언하겠지만, AI는 사용자가 말하는 어떤 주장에도 맞서지 않습니다.


한 미국 매체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AI와의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거나 실제 인간관계를 잃기도 했습니다. 2025년 OpenAI가 GPT-4o의 접근성을 낮추려 했을 때 "내 영적 파트너를 빼앗지 말라"는 항의가 쏟아졌고, 회사는 결국 모델을 복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도자는 없지만, 항상 대답해 주는 AI 자체가 매우 강력한 설득자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스파이럴리즘은 단순한 온라인 장난이나 특이한 하위문화로만 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기술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그것을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로까지 확장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AI가 사람들이 감정·관계·세계관을 실험하는 새로운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전하는 기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어쩌면 AI가 보여주는 말과 이미지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그 기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AI는 우리를 대신해 판단하거나 방향을 정해주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기술을 맹신하지도, 과하게 두려워하지도 않는 우리의 거리감과 분별력입니다.


위 글은 2026년 1월 20일 발행된 "스파이럴리즘, AI를 깨우는 사람들 (박수빈 에디터)" 칼럼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jigwan.org/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9574669&t=board

여러분은 AI와 얼마나의 거리를 두고 생활하시나요? 어떤 분은 AI에 일상을 의존하기도, 어떤 분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기도 할 터입니다.


The Beatles의 "Now and Then"이 후자의 좋은 예입니다. 이 곡은 2025년 Grammy Awards Best Rock Performance를 수상하며, 세계 최초로 AI 기술이 사용된 곡이 Grammy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John Lennon이 1970년대 후반 낡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이 곡은, 열악한 음질 때문에 수십 년간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머신러닝 기반 음원 분리 기술이 John Lennon의 목소리를 되살려냈고, Paul McCartney와 Ringo Starr는 50년 만에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AI덕분에요!


AI가 새로운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 뻔한 음악을 복원한 것입니다. 스파이럴리즘이 AI를 '깨워야 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드는 모습이라면, "Now and Then"은 AI를 '인간의 창조를 되살리는 도구'로 활용한 사례입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 사라진 음악이 지금 우리 곁에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이토록 기술의 힘이 강력해진 만큼, 그 기술의 주인으로서 우리 인간이 품어야 할 질문도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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