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고전, 지금의 나에게 묻다."
1월이 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으며 더 나은 한 해를 기대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준비들이 설렘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기대보다 익숙함이 먼저 채워집니다. 계획은 점점 구체적인데, 삶이 선명해졌다는 확신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일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써왔는지, 그 애씀은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기준으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 더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찾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형성된 나만의 삶의 기준을 차분히 되짚어봐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작 독서 대신 고전을 다시 펼쳤습니다. 고전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인간이 반복해서 마주해온 삶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흔들리는 마음의 방향과 후회하고 집착하며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감상을 되짚는 일이기보다는, 이미 한번 읽었던 문장들 속에서 지금의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발견하는 즐거운 경험에 더 가깝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문장들,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이제 와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의미로 남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전이 불편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고전은 답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애써 합리화해 온 삶의 기준을 가만히 흔들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 추천드리는 고전은 저에게 예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 책들입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나이에 따라 정말 다르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선택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또 다른 굴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어떻게 또 다른 사슬이 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욕망과 집착은 늘 더 단단한 사슬로 돌아옵니다. 젊을 때는 방황하는 청춘의 성장소설로 읽혔다면, 지금은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이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말 자유를 원했는가?”
『남아 있는 나날』에서는 품위와 책임을 최우선에 두고 살아온 한 집사의 회고가 조용하지만 잔인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성실했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실패한 인생의 회고라기보다, 너무 성실했기에 미뤄두었던 질문이 뒤늦게 찾아오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었는가?, 남은 나날은 어떤 선택으로 채울 것인가?”
『행복의 정복』은 행복해지는 법을 말하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지부터 짚어냅니다. 행복을 운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의 결과로 설명하는 러셀의 문장은 새해의 다짐보다 훨씬 현실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보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들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새해의 계획에 담아볼 만한 생각들이 많습니다.
『소설 공자』는 위대한 사상을 설파하기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가 결국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성공이나 성취보다, 어떤 말과 어떤 선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여기에 영화 '라쇼몽'으로 더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중 『덤블 숲』을 더했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술이 이어질수록 진실은 멀어지고 자기합리화만 또렷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의 상대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서사를 얼마나 능숙하게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냅니다.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그리고 사실 그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쉽게 진실을 덮어버리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나면 “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40대 이후에 이 단편 생각이 많이 나는 이유도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은 해석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해온 나이가 되었기 때문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다섯 권의 고전은 서로 다른 장르와 문체를 가졌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말 것, 감정에 기대어 판단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먼저 의심할 것과 같은 공통된 메세지를 전해주는 듯 합니다. 2026년 1월, 새해의 목표를 적기 전에 다시 읽을 이유가 분명한 책들과 함께 미뤄두었던 질문을 꺼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다시 읽는 고전, 지금의 나에게 묻다."
1월이 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으며 더 나은 한 해를 기대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준비들이 설렘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기대보다 익숙함이 먼저 채워집니다. 계획은 점점 구체적인데, 삶이 선명해졌다는 확신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일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써왔는지, 그 애씀은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기준으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 더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찾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형성된 나만의 삶의 기준을 차분히 되짚어봐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작 독서 대신 고전을 다시 펼쳤습니다. 고전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인간이 반복해서 마주해온 삶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흔들리는 마음의 방향과 후회하고 집착하며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감상을 되짚는 일이기보다는, 이미 한번 읽었던 문장들 속에서 지금의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발견하는 즐거운 경험에 더 가깝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문장들,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이제 와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의미로 남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전이 불편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고전은 답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애써 합리화해 온 삶의 기준을 가만히 흔들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 추천드리는 고전은 저에게 예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 책들입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나이에 따라 정말 다르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선택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또 다른 굴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어떻게 또 다른 사슬이 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욕망과 집착은 늘 더 단단한 사슬로 돌아옵니다. 젊을 때는 방황하는 청춘의 성장소설로 읽혔다면, 지금은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이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말 자유를 원했는가?”
『남아 있는 나날』에서는 품위와 책임을 최우선에 두고 살아온 한 집사의 회고가 조용하지만 잔인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성실했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실패한 인생의 회고라기보다, 너무 성실했기에 미뤄두었던 질문이 뒤늦게 찾아오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었는가?, 남은 나날은 어떤 선택으로 채울 것인가?”
『행복의 정복』은 행복해지는 법을 말하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지부터 짚어냅니다. 행복을 운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의 결과로 설명하는 러셀의 문장은 새해의 다짐보다 훨씬 현실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보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들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새해의 계획에 담아볼 만한 생각들이 많습니다.
『소설 공자』는 위대한 사상을 설파하기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가 결국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성공이나 성취보다, 어떤 말과 어떤 선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여기에 영화 '라쇼몽'으로 더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중 『덤블 숲』을 더했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술이 이어질수록 진실은 멀어지고 자기합리화만 또렷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의 상대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서사를 얼마나 능숙하게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냅니다.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그리고 사실 그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쉽게 진실을 덮어버리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나면 “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40대 이후에 이 단편 생각이 많이 나는 이유도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은 해석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해온 나이가 되었기 때문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다섯 권의 고전은 서로 다른 장르와 문체를 가졌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말 것, 감정에 기대어 판단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먼저 의심할 것과 같은 공통된 메세지를 전해주는 듯 합니다. 2026년 1월, 새해의 목표를 적기 전에 다시 읽을 이유가 분명한 책들과 함께 미뤄두었던 질문을 꺼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 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뿐이다."
침묵을 지키던 켄턴 양이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중략)..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그때 내가 곧바로 무슨 대꾸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켄턴 양의 말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 일이 분 정도 걸렸으니까.
이런 사소한 문제에 적용되는 관점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축구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 관람을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서 그만큼 즐겁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즐겁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기회는 축구를 관람할 기회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어떤 한가지를 잃게 된다고 해도 다른 것에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이 정처 없는 길가의 티끌과 같다 바람따라 흩어져 날아가니 일정한 몸 있다고 할 수 없다 땅 위에 떨어져 형제가 되니 어찌 피를 나눈 사이뿐이랴 즐길 기회가 있으면 즐길 일이니 말술을 마련해 이웃을 모으리 젊음은 다시 오는 일이 없고 하루에 두 번 아침은 없는 법이니 이때를 맞아서 힘쓰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덤불 숲'
난 가까스로 피로 찌든 몸을 일으켜 나무에서 떨어졌어. 그런 내 앞에는 아내가 떨어뜨리고 간 칼이 빛나고 있었고, 난 그걸 집어 들자마자 단숨에 가슴팍에 꽂았어. 뭔가 피비린내 나는 응어리가 입 밖으로 치밀어 올랐지. 그래도 전혀 괴롭지는 않았어. 가슴팍이 서늘해지자 온통 정적만이 흐를 뿐. 실로 적막함이란 이런 것인가. 그늘진 산자락 덤불 속 하늘에는 작은 새 한마리의 지저귐도 들리지 않아. 그저 삼나무와 대나무 가지 끝으로 쓸쓸한 햇살만 가득하지.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6.2.28까지 시청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