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20] 느리게 산다는 것은 – 바쁜 시대의 가장 큰 용기

김은희
2025-12-16
조회수 83



Gustave Courbet, 'The Calm Sea", 1869,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얼마전 TV에서 방영했던 ‘김부장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을 비춰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마치 초 단위로 쪼개진 시간표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듯 멈출 틈 없이 움직이고, 잠시의 여유조차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김부장 역시 평생을 회사에 바치며 임원 승진만을 목표로 달려온 인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하고 회사를 떠난 그는,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데, 왜 마음은 공허하고 삶은 막막하기만 한 걸까. 드라마는 그가 불안과 혼란 속에서 다시 자신을 마주하고,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가는 고독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각자의 ‘김부장’이 있습니다. 성과와 속도에 매달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마음, 잠시 멈추면 불안해지는 감정, ‘쉰다’는 말보다 ‘더 한다’는 말이 익숙한 삶. 우리는 그렇게, 빠르게 살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쉼 없이 달려가는 마음에, 삐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은』은 잠시의 브레이크를 걸어줍니다. 저자는 "느리게 산다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작지만 강력한 저항의 방식이라고, 그리고 빠르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삶의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효율이 높아질수록 삶의 결은 얇아집니다. 빨리 먹는 식사는 배는 채워도 향은 남기지 않고, 짧은 대화는 정보를 남기지만 온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느림은 그런 일상 속 틈에서 다시 ‘사람의 온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느림을 생활 속에 되돌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의 릴스를 확인하기보다, 창문을 열고 바람의 온도를 느끼며 단 5분이라도 아침에 마음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 그 짧은 시간이 하루의 리듬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 굳이 뭔가를 듣거나 보지 말고 그저 걸어보세요. 도심의 소음 속에서도 들리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 하루의 감정이 정리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작은 느림들이 쌓이면, 삶은 어느새 균형을 되찾고, 마음은 더 단단해집니다. 느림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타의에 의해 멈춘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다시 보게 됩니다. 달리기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추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지요.


오늘 하루, 아주 작은 느림을 허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향을 한 번 더 들이마시고,
길을 걸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의 속도를 따라가 보세요.
그 짧은 순간들이 쌓이면, 마음의 숨이 길어지고 삶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빠른 시대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단단한 행복의 속도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호에는 한충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느리게 산다는 것 피에르 쌍소, 강주헌 번역, 드림셀러, 2023.

시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요즘 달라진 것은,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서 행동하는 것이 한층 우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힘이 빠져 죽고 말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따라서 몽상가들, 예컨대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사람들,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하거나 존재의 즐거움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런 흐름을 뒤흔들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사상가들, 저명한 공상가들도 대거 현재의 흐름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우리 인격을 형성하는 데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만큼의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고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예찬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의 성격을 따져보지 않은 채. (p.25)

“시골에서는 힘든 하루 일을 끝낸 남자들이 포도주잔을 얼굴 높이까지 치켜들어 전등불에 비추며 가만히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마셨다.” 느린 분위기를 풍기는 이 문장은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전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의 “머리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읽은 다음부터 저는 잔에 따른 포도주를 바로 입으로 가져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쌍소는 그의 책에서 현대인이 삶에서 놓친 느림의 의미를 다시 찾아서 이야기해 줍니다.  - 한충수 교수

📚 관조하는 삶 한병철, 전대호 번역, 김영사, 2024.

무위의 풍경들

니체도 이렇게 쓴다. "발명하는 인간은 행위하는 인간과 전혀 다르게 산다. 발명하는 인간은 목적 없고 규칙 없는 행위를 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도들, 새로운 길들. 그는 유용한 행위를 하는 인간처럼 익숙한 길을 가기보다 더 많이 더듬는다." 창조적으로 행위하는 자는 행위하되 어떤 성과를 위해 행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용하게 행위하는 자와 구별된다. 이처럼 행위에 무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무언가, 있었던 적 없는 무언가의 발생이 가능해진다. (p.33~34)

현대 사회에서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 사람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명상의 시간을 아깝게 느낄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관조하는 삶, 무위에 대하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명상, 즉 무위의 관조하는 삶에 의미를 되찾아 줍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실존의 찬란한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명상, 한번 실천해 볼만하지 않을까요? - 한충수 교수

📚 고백록 성 아우구스티누스, 박문재 번역, CH북스, 2019.

인간의 비참하고 불행한 삶

이 세상에서의 형통함에는 두 가지 화가 수반되는데, 첫 번째는 역경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두 번째는 기쁨이 있어도, 그것이 부패하고 타락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의 역경에서도 세 가지 화가 수반되는데, 첫 번째는 형통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참담함을 느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역경을 견디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런데도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이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이 아니란 말입니까? (p.341) 

북미 철학자 버논 버크(Vernon Bourke)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류의 사상과 행동과 삶과 죽음에까지 인격적인 감동과 영향을” 주었고,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크게 영향을” 준 위대한 인물로 평가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신의 은총에 대한 장엄한 찬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상을 자기반성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고백록』은 신을 기준으로 삼은 명상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 한충수 교수

📚 명상록 수업 피에르 아도, 이세진 번역, 복복서가, 2023.

행동과 가치, 정의와 공정

운명은 각자에게 그 존재와 가치에 걸맞은 것을 나눠준다. 모든 사건은 일어나야 할 사람에게 딱 맞게 일어난다. 

너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과 운명이 너를 위하여 자아놓은 것만 사랑하라. 그보다 더 적절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VII, 57)

그 사건은 너에게 일어났고, 너에게 맞게 정해졌고, 가장 오래된 원인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운명의 실로 너와 이어졌다.(V, 8, 12)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잘된 일이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운명으로 너와 이어진 것, 처음부터 우주가 너를 위하여 정해놓고 자아놓은 것이다.(IV, 26, 4) (p.298)

올해 하반기 “지혜의 나무” 추천 도서의 큰 주제가 “명상”임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습니다. 이 책은 스토아 철학자인 황제가 자기 수양을 위해서 작성한 기록의 모음집입니다. 아쉽게도 『명상록』이 과거에 추천 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어서, 이 책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피에르 아도의 『명상록 수업』)를 대신 추천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아도는 고대 철학에서 인간 존재의 변화와 영적 훈련을 연구했기에 그는 우리를 『명상록』으로 안내하는 최고의 길잡이입니다. - 한충수 교수



📺 바쇼 오쿠로 가는 작은 길』 I 고전5미닛 (5:46)
봄이 떠나간다
새들은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6.1.30까지 시청 가능합니다. 


📺 마릴린 폴 『쉼과 나아감에 대하여』  | 유성호의 데맨톡 (21:42)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I 이교수의 책과 사람 (19:40)


📺 별빛내린천 | 케렌시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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