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211] 바다가 보고 싶은 날엔

김은희
2025-10-14
조회수 121



올해 추석 연휴는 장마처럼 비가 이어졌지만, 2025년 한 해는 파란 하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른 해와 달리 황사도 거의 없었고,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지만 깨끗한 하늘에 흰 구름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날이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문득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삶은 흐른다』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 바다가 보고 싶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요동친다.” 저는 그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관성처럼 이어질 때,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며 바다를 떠올리곤 합니다.


도시의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바다가 그리운 이유는, 바다가 경계의 감각을 넓혀 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도심의 길은 방향을 정해 주지만,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으로 모든 길을 열어 둡니다. 그 앞에 서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잠시 잊혀지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마음에 남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결국, 내 안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늘 곁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를 찾는 대신, 하루 안에 작은 물길을 내보려 합니다. 마음이 산란할수록 먼저 호흡을 고릅니다. 들숨 다섯 번, 날숨 다섯 번. 숨이 잔잔해지면 해야 할 일들 중 오늘의 일 하나를 골라 조용히 집중합니다. 책 한 페이지 읽기, 집안 한 구역 정리, 문단 한 단락 쓰기처럼요. 한 점에 머무르면 파도처럼 밀려오던 생각이 물러나고, 몰입의 즐거움 속에서 복잡함이 단순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종종 ‘도피’를 꿈꾸지만, 실은 바다의 파도 같은 리듬을 되찾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큰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반복이 아닐까 싶어 이렇게 적어 둡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오늘의 일 하나에 조용히 집중하고, 작은 습관이 쌓이면 강처럼 조용히 길이 난다.” 길은 처음부터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며 생기는 것이니까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 하루 안에 지중해의 햇살 같은 여유와 바다의 호흡 같은 흐름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넓고 자유로운 삶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탓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그 마음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봅니다. 한 호흡, 한 일, 한 걸음. 그렇게 하루의 루틴을 묵묵히 이어 가다 보면, 바다는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습관을 따라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었음을 언젠가 문득 알아차리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바다의 운명은 끝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바퀴와 같다. 

운명의 바퀴는 우리의 삶에 좋은 일과 나쁜일,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한순간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은 흐른다』





이번 호에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의 선정 도서와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FIKA, 2023

크라켄_새로운 지식으로 편견 부수기

매일 자신만의 지도 위에서 새로운 곳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연습. 같은 바다만 알고서 끝내지 않고 새로운 바다를 수집하듯이 즐겁게 탐구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미 증명되고 나와 있는 답에 안주하지 말고 우리의 시야와 탐구 분야를 넓혀보자.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먼저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알아야 앞으로 더욱 알아갈 수 있다. 미지의 존재 혹은 용들과 맞서는 순간에 우리만의 확신이 생겨난다. (p.156)

참으로 우리의 인생은 바다와 같다. 고난과 역경, 환희와 기쁨, 탄생과 죽음이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바다. 순식간에 밀려오지만, 또 어느새 멀어지는 바다. 프랑스의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는 밀물과 썰물, 난파, 곶, 등대, 섬, 푸른색, 빙하, 해적 등등, 바다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사물과 개념을 통해 인생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부드럽게 펼쳐낸다.  - 이현정 교수

📚 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이른비, 2018

가시 없는 장미

사로잡힘이 행복을 창조한다. 이 음악의 곡조는 우리 삶의 흔들림과 함께 변한다. 우리의 청소년 시절은 베를렌이나 랭보에 따라 리듬이 맞추어질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더 옛날의 더 비밀스러운 다른 사람들 차례가 된다. 대개는 유행가 가락들로도 충분하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시가 지닌 '시적' 특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빵과 물처럼 필요로 하는 것, 우리가 어떤 육체에 대하여 느끼듯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 대상은 바로 우리를 탁 트인 하늘로 내닫게 하고 우리의 마음속 고백을 해방하는 저 가벼운 충동이다. (p.182)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는 그가 젊은 시절 여행했던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여러 지역에 관한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지적 사유를 통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각과 정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힌다. 깊은 시적 감수성과 남다른 예지력이 가득한 문장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명상의 고요와 빛의 향기 속에 빠져든다.  - 이현정 교수

📚 은빛 물고기 고형렬 지음, 최측의 농간, 2016

몸은 죽고 마음은 죽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경계 없이 돌아다니다 이곳에 왔다면, 돌아오고 있는 것들이 그 돌아옴을 알 수 없고 돌아온 것들이 무엇으로 돌아와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지금 이곳에 무엇으로 있다는 것은 그곳에 무엇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면. 우리가 없었던 적이 이 우주 속에서 한순간도 없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어떤 하나의 인이 사과 속에 숨어도 그가 어디서 열매를 맺으며 살아남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소년도 아버지도 조사도 모를 것이다. 

모든 생명은 영원한 나그네다. (p.416) 

장자의 시인으로 알려진 고형렬 시인은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어와 연어의 일생을 탐구하면서, 삶이 어떻게 시작되고 구비치며 깎기고 다시 회생하는지를 겸허하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슬픈 언어로 표현해낸다. "사랑하는 길은 자연 속에 저들을 가만히 두는 일뿐이다"라는 문장으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삶의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고요한 자세로 깨닫게 된다.  - 이현정 교수

📚 떠오르는 숨 알렉시스 폴린 검스 지음, 김보영 옮김, 접촉면, 2024

휴식

친밀함의 다양한 형식들이 내 피부가 아니라는 걸, 결코 내 갑옷이 아니었음을 가르쳐 주어 고마워요. 방해받지 않고 광활하게 펼쳐진 휴식의 신성함이 당신에게 있길 바랍니다. 모든 것 아래에서 드러나는 당신의 일부를 사랑합니다.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쉬길 바라요. 내가 당신 곁에서 피부를 대고 있는 이유는 당신이 혼자라 느낄 때도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다시 잠수하기 전에, 당신의 새로운 은빛을 보려고요. (p.200)

포획과 사냥, 선박충돌과 해양오염으로 멸종되거나 상처입는 해양 동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퀴어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알렉시스 폴린 검스는 해양 포유류인 고래, 돌고래, 물범이 생존해 온 방식과 흑인 여성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듣기, 숨쉬기, 소리내기, 협력하기, 속도 늦추기와 같은 소박하지만 중요한 삶의 지혜들을 우리에게 따뜻하고 용기 있게 건넨다.  - 이현정 교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 I 고전5미닛 (5:35)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5.11.30까지 시청 가능합니다. 


📺  GoPro's Most Beautiful Underwater Moments | 고프로 (7:27)


📺  My Octopus Teacher I Netflix (2:21)



구독 링크 공유하기! 👉공유하기
지난 호가 궁금하다면? 👉보러가기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한 주간 성찰해 볼 만한 삶의 작은 물음들을 책, 강연, 다큐, 영화, 기사 등 다양한 인문 콘텐츠를 통해 살펴보는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과 함께하는 순간, 당신의 삶이 더욱 깊이 있고 단단해질 거예요.^^ ▶아카이빙 보기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30분" 가장 먼저 위클리 지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