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에 차분히 앉아 휴식을 취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는 과연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 같은 기계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단 1분조차도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손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마음은 다음 할 일, 다음 약속, 다음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왜 이토록 분주하게 살아가는 걸까요?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요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 지나간 선택들,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헛헛함이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혼자 있는 법을 모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불행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쉼 없이 움직이고, 채워 넣고, 반응합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멈추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한때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누구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는 법을 잘 알았던 그가, 20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국 승려가 되어 17년을 명상하고 고요히 사는 법을 배웁니다. 이후 세속으로 돌아와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뒤에는 남은 생을 더 느리게, 더 자유롭게 살아냅니다. 책 제목처럼 그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많은 고통은, 타인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며, 확신을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판단을 비워낼 줄 알았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속도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느리게 걷고, 멈춰 있는 사람을 보면 불안해집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뛰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내면은 피로해지고, 마음은 금세 방향을 잃고 헤맵니다. 이때,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할 것은 “우아하게, 느리게, 나를 내버려 두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가장 많이 했던 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습니다. 생각이 스쳐가도 개입하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분석하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는 연습. 그렇게 그는 고요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놓아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서도 그는 “내 삶은 여전히 충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마음속에 자유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늘 바쁘고 조급하게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쥔 스마트폰은 쉴 틈 없이 새로운 자극을 밀어넣고, 세상은 멈추지 말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처럼 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아하게 나를 내버려 두는 연습,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길이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의 하루는 어떤가요?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셔보세요. 그렇게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에 차분히 앉아 휴식을 취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는 과연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 같은 기계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단 1분조차도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손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마음은 다음 할 일, 다음 약속, 다음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왜 이토록 분주하게 살아가는 걸까요?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요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 지나간 선택들,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헛헛함이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혼자 있는 법을 모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불행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쉼 없이 움직이고, 채워 넣고, 반응합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멈추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한때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누구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는 법을 잘 알았던 그가, 20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국 승려가 되어 17년을 명상하고 고요히 사는 법을 배웁니다. 이후 세속으로 돌아와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뒤에는 남은 생을 더 느리게, 더 자유롭게 살아냅니다. 책 제목처럼 그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많은 고통은, 타인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며, 확신을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판단을 비워낼 줄 알았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속도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느리게 걷고, 멈춰 있는 사람을 보면 불안해집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뛰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내면은 피로해지고, 마음은 금세 방향을 잃고 헤맵니다. 이때,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할 것은 “우아하게, 느리게, 나를 내버려 두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가장 많이 했던 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습니다. 생각이 스쳐가도 개입하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분석하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는 연습. 그렇게 그는 고요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놓아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서도 그는 “내 삶은 여전히 충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마음속에 자유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늘 바쁘고 조급하게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쥔 스마트폰은 쉴 틈 없이 새로운 자극을 밀어넣고, 세상은 멈추지 말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처럼 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아하게 나를 내버려 두는 연습,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길이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의 하루는 어떤가요?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셔보세요. 그렇게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험하는 자아 vs 기억하는 자아’
경험과 그 기억을 혼동하는 것은 인지 착각의 좋은 예이며, 사람들은 경험을 기억으로 바꿔치기 하는 탓에 과거 경험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발언권이 없다. 기억하는 자아는 더러 엉터리지만, 삶의 점수를 기록하고 삶의 교훈을 지배하는 자아이며, 결정을 내리는 자아다. 우리가 과거에서 배우는 교훈은 미래 기억을 질을 극대화하되, 미래 경험의 질도 극대화한다는 보장은 없다. 한마디로 기억하는 자아의 횡포다. (p.557)
일과 감정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포착해야 한다. 식사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든가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동안 곧잘 몰입 경험에 이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확인되는 성향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실은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뜻밖에도 일하기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TV를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데서 더 큰 즐거움을 맛보았는지도 모르며 혹은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생은 이런 식으로 살라고 누가 정해놓은 규칙이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다. (p.33)
인생을 바꾸게 한 만남
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디서 살 것인가?’의 프레임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어디서 살고, 어디서 쇼핑하고, 어디서 식사할 것인가라는 장소의 프레임이 한국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행복은 ‘어디서’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 커다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 자기 삶에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가 있었다. (p.142)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p.30)
괴짜들의 공동체
우리는 해변에 쓸려온 자갈과 같다네. 처음엔 거칠고 들쭉날쭉하지. 그런데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네. 우리가 그곳에 머물며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거칠게 밀치고 비비다 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닳게 된다네. 결국 둥글고 매끄러워지지. 그러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게 될 걸세. (p.46)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5.8.31까지 시청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