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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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희망] 사별, 그리고 그 후의 감정들 (목정후 연구원)

2025-04-24
사별, 그리고 그 후의 감정들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마주하기 힘든 일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즉 사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사별은 예외 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신은 우리 모두를 죽음의 문 앞에 서도록 만들었고, 그 문 앞을 지나는 때와 장소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사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이며, 우리에게는 사별 이후에 겪는 경험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게 최선일 것입니다. 사별을 한 뒤 인간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사별 후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경험할까요?

 

사별의 언어, 비탄과 애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직후, 많은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은 슬픔,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두려움, 고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여 경험하는 죄책감, 나를 남기고 먼저 떠난 고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 등, 사별 이후에는 하나로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들이 물밀듯이 찾아옵니다. ‘비탄(grief)’은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들을 포함하여 사별자의 심리적 경험 전반을 일컫는 말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고인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 사별 이후로 입맛이 없어지는 것, 고인이 그리워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 등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비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로는 ‘애도(mourning)’가 있습니다. 두 용어 모두 사별로 인한 슬픔과 비애를 가리키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탄은 사별자의 ‘심리적 경험’을 강조하는 말이고, 애도는 사별 이후 사별자가 겪는 ‘과정’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별자가 사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나 사별 이후 삶의 과제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 전체는 애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달리 경험하는 비탄의 길

애도를 하는 과정에서 비탄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사람마다 비탄을 겪는 방식은 다릅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사람마다 다른 비탄 경험을 분류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George Bonanno는 비탄의 강도와 지속되는 기간에 따라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비탄 경험을 구분했습니다.


우선, 보편적 비탄(common grief)을 겪는 사람들은 사별 직후 강한 비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비탄의 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해집니다. 반면, 탄력적 비탄(resilient grief)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사별 직후에 경험하는 비탄의 강도가 비교적 약한 편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약한 수준의 비탄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연구자들은 약 80%~90% 가량의 사람들이 사별 이후 보편적 비탄과 탄력적 비탄을 경험한다고 보고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만성적 비탄(chronic grief)을 들 수 있습니다. 만성적 비탄을 겪는 이들은 사별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강한 수준의 비탄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사별자의 약 10~20% 정도가 만성적 비탄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비교적 적은 비율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 번 이상의 사별을 경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 비탄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강렬한, 때로는 잔잔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탄의 강도가 일정하지 않고 변동성을 갖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전에 제시된 그림과는 달리, 다음의 그림에서는 비탄의 강도 변화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때에 따라 아주 강렬하게 혹은 비교적 약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비탄 경험의 강도가 하루라는 짧은 시간 내에서도 크게 변화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2주의 연구 기간 동안 참여자들에게 매일 다섯 번씩 지난 세 시간 사이에 다양한 비탄 반응을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가 ‘고인을 떠올릴 때의 슬픔’, ‘고인에 대한 그리움’, ‘고인과 관련된 생각/이미지가 마음 속에 의도치 않게 떠오르는 것’과 같은 비탄 경험을 많이 할 때도 있었고 전혀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만성적 비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비탄 경험의 변화 폭이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더욱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애도의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별을 한다고 항상 비탄을 크게 느끼는 것은 아니며, 설령 비탄을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픔도, 슬픔이 아닌 감정도, 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잊지 않기

최근에 오스트리아의 한 연구진은 과거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 및 현재 누군가와의 사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사별이 어떤 의미인지, 죽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참여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죽음과 사별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고되고 고통스러우며 비탄한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참여자들은 비탄함 이외에도 행복, 아름다움, 평안함, 활기참 등과 같은 비교적 긍정적인 속성의 감정을 경험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사별 곁에는 고통과 슬픔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는 영원하지 않으며, 애도 과정에서 슬픔 말고도 다양한 감정들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별 이후에 우리는 모두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은 사별 이후 슬픔의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며, 결코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사별 이후에 모두가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알맞은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애도의 과정에 있다면, 내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모습의 감정들이 모두 자연스럽고 정당한 감정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없애거나 바꾸려 애써 노력하기 보다는, 그저 사별을 견뎌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럴 때, 사랑했던 이의 흔적을 마음에 품고 나아갈 힘이 조금씩 생겨날 것입니다.


"이 글은 희망연구소 뉴스레터 13호에 소개되었습니다"


#사별 #비탄 #애도 #수용 #위로  



본문 이미지

그림1: Pixabay, 링크

그림2: Bonanno (2009)을 참고하여 재구성함

그림3: Bonanno (2009)와 Lenferink 등 (2024)을 참고하여 재구성함


참고문헌

권석만. (2019).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학지사

Bonanno, G. A. (2009). The other side of sadness: What the new science of bereavement tells us about life after loss. Basic Books.

Heimerl, K., Schuchter, P., Egger, B., Lang, A., Frankus, E., Prieth, S., … Reitinger, E. (2022). Dying is never beautiful, but there are beautiful moments: qualitative interviews with those affected on the subject of ‘good dying.’ Mortality, 28(4), 543–561. https://doi.org/10.1080/13576275.2022.2034773

Lenferink, L. I. M., Terbrack, E., van Eersel, J. H. W., Zuidersma, M., Franzen, M., & Riese, H. (2024). Fluctuations of prolonged grief disorder reactions in the daily life of bereaved people: an experience sampling study. Current Psychology, 43(47), 35821-35832. https://doi.org/10.1007/s12144-024-06987-2

Levi-Belz, Y., Krysinska, K., & Andriessen, K. (2021). "Turning personal tragedy into triumph":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studies on posttraumatic growth among suicide-loss survivors. Psychological trauma : theory, research, practice and policy, 13(3), 322–332. https://doi.org/10.1037/tra0000977


작성자: 목정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박사과정 (임상심리 전공) / 희망연구소 연구원

삶의 끝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자살과 자해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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