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프로그램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 역사적 명곡을 선정하고 이를 음반과 영상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로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와 공동으로 제작하였습니다.
2. Adagio cantabile
이 내림가단조로 되어 있는 '아다지오 칸타빌레' 악장은 두 개의 종속적인 동기로 이루어진 투명한 주요 주제를 지니며, 베토벤 시대의 사람들은 단조로 되어 있는 간결한 '발전부'에 놀라곤 했다.
베토벤은 1795년 자신의 ‘op.1’을 출판하기 이전에 이미 많은 분량의 멋진 음악을 써둔 상태였고, 그 가운데 일부는 출판되었다. 명랑한 분위기의 ‘피아노 삼중주 내림마장조’도 그 중 하나였다.
베토벤은 분명 어떤 곡을 자신의 첫 출판물로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를 고심했고, 결국 세 개의 피아노 삼중주를 묶어 출판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아마추어 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였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그는 가장 강렬한 작품인 ‘삼중주 다단조’를 연작의 첫 곡으로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든은 이 삼중주가 너무 미래지향적이며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토벤은 이 의견을 질투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으나, 당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하이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1786년이라는 머잖은 과거에 모차르트가 썼던 위대한 ‘피아노 사중주 사단조’는 너무 안 팔린 나머지 출판업자가 모차르트의 두 번째 사중주인 ‘내림마장조’ 출판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베토벤은 ‘삼중주 다단조’는 연작의 맨 끝으로 ‘숨겼으며’, 이 연작을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함과 동시에 사전 예약을 받아 출판했는데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23명이 아르타리아에서 출판한 이들 삼중주를 245부 선주문했으며, 베토벤 자신도 적잖은 부수를 팔았다.
C.P.E.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베토벤도 자신의 삼중주를 근본적으로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여겼지만, 이 장르는 점차 민주적으로 변해갔다. 바흐가 바이올린 주자와 첼로 주자에게 흥미롭게 연주할 만한 것을 거의 주지 않았던 반면에 하이든은 바이올린 파트를 대폭 개선했으며, 모차르트는 두 악기에 적잖은 자유를 부여했고 베토벤은 한층 더 나아갔다. 첫 두 개의 첼로 소나타가 보여주듯이 그는 처음에는 독주 악기로서 첼로가 지닌 가능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가 성숙기에 쓴 삼중주에서는 세 악기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본 프로그램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 역사적 명곡을 선정하고 이를 음반과 영상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로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와 공동으로 제작하였습니다.
2. Adagio cantabile
이 내림가단조로 되어 있는 '아다지오 칸타빌레' 악장은 두 개의 종속적인 동기로 이루어진 투명한 주요 주제를 지니며, 베토벤 시대의 사람들은 단조로 되어 있는 간결한 '발전부'에 놀라곤 했다.
베토벤은 1795년 자신의 ‘op.1’을 출판하기 이전에 이미 많은 분량의 멋진 음악을 써둔 상태였고, 그 가운데 일부는 출판되었다. 명랑한 분위기의 ‘피아노 삼중주 내림마장조’도 그 중 하나였다.
베토벤은 분명 어떤 곡을 자신의 첫 출판물로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를 고심했고, 결국 세 개의 피아노 삼중주를 묶어 출판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아마추어 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였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그는 가장 강렬한 작품인 ‘삼중주 다단조’를 연작의 첫 곡으로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든은 이 삼중주가 너무 미래지향적이며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토벤은 이 의견을 질투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으나, 당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하이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1786년이라는 머잖은 과거에 모차르트가 썼던 위대한 ‘피아노 사중주 사단조’는 너무 안 팔린 나머지 출판업자가 모차르트의 두 번째 사중주인 ‘내림마장조’ 출판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베토벤은 ‘삼중주 다단조’는 연작의 맨 끝으로 ‘숨겼으며’, 이 연작을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함과 동시에 사전 예약을 받아 출판했는데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23명이 아르타리아에서 출판한 이들 삼중주를 245부 선주문했으며, 베토벤 자신도 적잖은 부수를 팔았다.
C.P.E.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베토벤도 자신의 삼중주를 근본적으로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여겼지만, 이 장르는 점차 민주적으로 변해갔다. 바흐가 바이올린 주자와 첼로 주자에게 흥미롭게 연주할 만한 것을 거의 주지 않았던 반면에 하이든은 바이올린 파트를 대폭 개선했으며, 모차르트는 두 악기에 적잖은 자유를 부여했고 베토벤은 한층 더 나아갔다. 첫 두 개의 첼로 소나타가 보여주듯이 그는 처음에는 독주 악기로서 첼로가 지닌 가능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가 성숙기에 쓴 삼중주에서는 세 악기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