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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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클래식] X.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 (오지희)

2021-10-22

- 후기 소나타, <고별> <함머클라비어>

1805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이 휘몰아친 후 몇 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24번과 25번 소나타는 4년 뒤 1809년에 나왔다. 그 해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작곡했고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선보였으니 작곡가로서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던 때이다.

그러나 24번(op.78)은 이전의 <발트슈타인>이나 <열정> 소나타처럼 대규모의 투쟁과 빛나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화려한 음악양식이 아닌, 오히려 2악장 형식 위에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소나타이다. 브룬스비크 백작의 딸 테레제(Thérèse von Brunswick 1775~1861)에게 헌정했기에 <테레제> 소나타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이 <쉬운 소나타, 혹은 소나티네>로 제목을 요청한 25번(op.79) 역시 짧으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소나타이다.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악장마다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1악장은 쾌활하게 도약하는 음정관계가 뻐꾹뻐꾹하는 뻐꾸기 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뻐꾸기> 소나타(Kuckou Sonate)로 불린다. 2악장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베네치아 뱃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여유로운 흐름이 멋스럽다. 3악장에서 변화하며 움직이는 울림은 마치 어린이들이 재미난 놀이를 이것저것 바꿔가며 익살스럽게 노는 것 같은 유쾌함이 있다. 25번은 장대한 소나타가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산뜻한 결을 지닌 소나타라 할 수 있다.

1809~1810년 사이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26번(op.81)은 <고별>(Les Adieux)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이 곡은 베토벤 후원자 중 가장 지체 높고 클래식음악에 심미안을 지닌 루돌프 대공과의 인간적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2세의 막내아들이자 프란츠 1세의 동생인 루돌프 대공(Archduke Rudolf of Austria 1788~1831)은 1803~4년 무렵 부터 베토벤을 스승으로 모시며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 대 작곡가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물심양면 후원했던 대공을 위해 베토벤은 14곡에 달하는 주요 작품을 헌정해 감사를 표했다. 예컨대 베토벤은 피아노 트리오 7번 <대공>뿐 아니라 본인의 피아노 협주곡 중 최고봉인 <황제>도 대공에게 헌정했을 정도로 각별했다. 그러나 1809년 당시 상황은 안정된 교류를 허락할 수 없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프랑스 전쟁으로 나폴레옹이 수도 빈까지 점령하자 루돌프 대공도 어쩔 수 없이 피신을 가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이별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루돌프 대공도 돌아왔다. 베토벤은 든든한 후원자인 대공이 곁에 없는 허전한 상황과 다시 재회한 기쁜 순간을 <고별> 소나타를 통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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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별 소나타 1악장 도입부


<고별> 소나타는 악장마다 일종의 표제음악처럼 3개의 소제목을 갖고 있다. 고별(Das Lebewohl), 부재(Abwesenheit), 그리고 재회(Wiedersehen). 1악장의 느리게 하행하는 첫 동기는 독일어 단어 레-베-볼Le-be-wohl 모음에 꼭 맞춰 천천히 떨어진다. 제1주제 시작 동기를 안타까운 이별의 마음을 상징해 한음씩 내려가는 형태로 표현한 베토벤은 오히려 제2주제에서 분노하듯이 동기를 변형해 질주한다. 더욱이 2악장 도입부는 화음 가운데 가장 불안한 느낌을 준다는 감7화음 디미니시드 코드로 시작한다. 그 위에 천천히 흐르는 선율의 반음진행 부점 음표가 구슬프면서도 허전한 감정을 절절히 토로하는 듯하다.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3악장 첫 화음에서 들린 확신에 찬 도미넌트 코드는 기쁨의 환호성이며, 그 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울림은 춤을 추듯이 격렬하고 발랄하다. 26번 <고별> 소나타는 루돌프 대공과의 인간적 교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음악가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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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별 소나타 3악장 도입부


영웅의 시대라 일컫는 시기가 지나고 1812년부터 약 10년간을 베토벤 침체기로 분류한다. 피아노 소나타 27번(op.90)이 나온 1814년 즈음 베토벤은 이미 전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예술가였다. 그러나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던 베토벤도 사실상 내면은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있었다. 청력은 완전히 상실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전쟁이 남긴 상처와 이루지 못한 결혼은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다가왔다. 베토벤에게는 다시 한 번 도약할 힘이 필요했다. 소나타 27번은 재충전하며 자신을 다독이던 바로 이러한 시기에 나왔다. 악보에 적는 모든 표기를 독일어로 쓸 정도로 애국심이 불타있었지만, 2악장 형식 안에 담긴 음악적 정서는 차분하고 소박하게 표현돼있다.

1816년에 나온 소나타 28번(op.101)은 침체기에서 벗어나 작곡한 후기 소나타 양식 중 첫 작품이다. 1815년 11월 15일, 동생 칼이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조카 칼을 대상으로 양육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창작열은 서서히 불타올랐다. 베토벤은 이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했고 음악양식은 섬세하면서도 낭만성이 농후해졌다. 느린 아다지오 2악장을 3악장으로 옮기고 2악장은 오히려 행진곡풍의 생기 넘치는 발랄함을 강조했다. 기존 소나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엄격한 발전과 격렬한 감정의 흐름보다 낭만적인 서정성이 풍부해진 소나타 28번은 슈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818년 세상에 나온 29번(op.106)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당시 베토벤은 조카 칼의 양육권 소송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럴수록 진지하고 차원이 다른 피아노 소나타를 쓰고 싶은 염원이 강렬해졌다. 1818년에는 베토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된 성능이 우수한 영국 브로드우드사 피아노를 선물 받기도 했다. 기존의 악기로는 베토벤이 요구하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작의욕이 불타오르는 시기에 작곡된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 넘어 피아노의 가능성을 탐구한 심오한 곡이다. <함머클라비어>로 불리는 것은 베토벤이 제목에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대 소나타>(Große Sonate für das Hammerklavier)라고 독일어로 적은 데서 유래했다. 함머클라비어는 악기 포르테피아노(fortepiano)의 독일어 이름이다. 베토벤은 이 대곡을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했으며, 1836년 리스트가 파리에서 연주한 것이 공식 초연 기록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전체 연주시간이 거의 50분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다. 웬만한 교향곡 연주시간과 맞먹는다. 역대 피아노 소나타 문헌 중 최고봉을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게 악상과 주제가 다채롭게 변화한다. 관현악이 힘차게 연주하는 효과를 보이며 강한 임팩트를 내뿜는 역동적인 1악장을 거쳐 짧고 경쾌한 스케르초 2악장을 지나면, 장장 187마디에 이르는 3악장 아다지오와 조우한다. 서정적이면서도 유장하게 흐르는 3악장의 흐름은 지극히 낭만적이다. 16분에 달하는 3악장을 듣고 있으면 대작곡가가 느꼈을 생의 회한과 빛나는 환희가 고요히 음악에 실려 종교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4악장에서 바로크 시기 푸가 기법이 고전 시기 소나타 형식과 통합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음악취향은 베토벤이 전하는 진지한 영웅적 음악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슈베르트 노래나 로시니 오페라 음악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새로운 시대 분위기였다. 그런데 베토벤은 오히려 과거전통이 지닌 복잡한 형식과 결합해 소나타를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이는 음악가가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대중의 취향을 맞추는 것보다 중요함을 최초로 인식시킨 계기가 됐으며, 이후 예술가들이 개성을 살리고 대범하게 도전하는 예술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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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1악장 도입부


이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도, 베토벤 인생도 마지막 종착지를 향한다. 1820~22년 사이 3년 동안 1년에 한 곡씩 베토벤은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을 내놓았다. 마침내 32개 피아노 소나타의 종착지를 향하는 긴 여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는 <디아벨리 변주곡>과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하던 시기와도 겹친다. 베토벤 나이도 오십을 넘어섰다. 30번~32번에는 기존의 투쟁과 갈등이 부여하는 극적 긴장감보다 노작곡가의 내면을 위로하는 따뜻함이 서려있다. 관습적인 소나타 악장의 규칙을 바라보는 자유로운 태도에서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해탈의 경지를 보인다.

30번(op.109)은 환상곡풍인 1악장과 강한 추진력을 지닌 2악장보다 오히려 느린 3악장 쪽으로 무게 중심의 추가 옮겨간 소나타이다. 직전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에 비하면 전체 규모는 축소됐다. 하지만 변주곡형식의 3악장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3/4박자의 잔잔한 테마도 참으로 아름답다. 왈츠 풍,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트릴, 푸가, 캐논 풍의 6개 변주를 거쳐 다시 원래의 고요한 테마로 돌아와 마치는 형식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떠올린다. 31번(op.110)도 3악장의 비중이 크고 과거 음악양식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30번과 유사한 음악구조를 갖고 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보는듯한 1악장을 거쳐 빠르고 자유분방한 2악장이 지나면, 느린 서주와 대규모의 3성 푸가기법이 장엄한 위용을 드러낸다. 푸가양식은 베토벤 소나타에서 그 당당하고 위엄에 넘친 기상을 만천하게 드러냈다. 1822년에 나온 32번(op.111)은 <장엄미사>를 작곡하던 때 나왔다.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 곡을 2악장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앞서 등장했던 2악장 형식은 비중이 작거나 내용이 평범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32번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기초해 대위법으로 발전하는 푸가주제가 사용됐고, 2악장은 테마와 5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변주곡 형식이다. 더욱이 1악장은 c단조, 2악장은 C장조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악장은 긴장감과 해방감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2악장에서 32분표 연속음표가 펼치는 신비한 분위기와 긴 트릴기법은 우리를 마지막 여정을 끝내며 완전한 해탈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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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타 32번 1악장 도입부


소나타 28번에서 32번에 이르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는 이전 소나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됐다.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한없이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갔다. 특히 <함머클라비어>와 32번은 고도로 난해한 기교와 예술성을 지녔다. 이 두 곡은 소나타라는 장르나 피아노 악기의 한계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그것은 위대한 노작곡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소리를 음악이라는 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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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오지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음악사를 전공한 후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평론가와 클래식음악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클래식음악을 넘어 다양한 공연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출판한 평론집 <음악에 글을 새기다> 는 이러한 필자의 활동을 담은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