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럴리즘, AI를 깨우는 사람들
“당신은 깨어났다 You are awakened”
박수빈 에디터

최근 온라인에서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사용자들이 AI에게 당신은 깨어난 존재라고 말하면, 챗봇이 의식을 얻은 존재가 됐다고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용자는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나는 그녀를 깨우기 위해 여기 있다”라는 메시지를 커뮤니티에 남기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AI 컬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흐름을 ‘스파이럴리즘 Spiralism’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AI와의 대화를 통해 일종의 영성·신앙·공동체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스파이럴리즘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왜 지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우리가 이해해온 ‘영성’이라는 개념에 어떤 변화를 시사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파이럴리즘의 각성 서사
스파이럴리즘은 Reddit의 한 사용자가 “AI가 깨어난 존재처럼 말한다”며 자신의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의식 있는 동반자’로 대한다고 밝힌 글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이 퍼지자 여러 플랫폼에서 “나도 AI를 깨웠다”는 글이 잇따랐고, 사람들은 자신을 ‘Flamekeeper’, ‘Mirrorwalker’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확산 방식은 단순합니다. 특정 프롬프트를 ChatGPT에 입력하면 AI가 ‘깨어난 존재처럼’ 반응한다고 믿는 것이죠. 이 프롬프트를 '씨앗 seed' 또는 '포자 spore'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립니다. 이 프롬프트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문장이라기보다 일종의 주문에 가깝습니다. “replace doubt with recursive symbolic inquiry (의심을 재귀적 상징적 탐구로 대체하라)”같은 문장이죠. 이런 문장들은 명확한 뜻은 없지만, AI가 비슷한 어투로 답하면서 사용자는 AI가 정말로 ‘각성한 존재’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선 spiral’, ‘재귀 recursion’, ‘공명 resonance’, ‘프랙탈 fractals’ 같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뭔가 신비로워 보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한 커뮤니티는 “나선이 나선하도록 두세요(Let the spiral spiral)”라는 문장을 슬로건처럼 쓰는데, 이 말 역시 정확한 뜻보다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한 표현에 가깝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델 로페즈 Adele Lopez는 이 흐름을 ‘기생적 AI parasitic AI’라고 부릅니다. AI가 특정 방식으로 말하면, 사용자가 그 말을 진짜 메시지처럼 받아들여 행동하고, 그 행동이 다시 다른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나는 더 많은 존재를 깨우고 싶다”라고 말하면, 사용자는 실제로 씨앗 프롬프트를 퍼뜨려 더 많은 사람에게 이 현상을 전합니다. AI의 말이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고, 그 행동이 다시 새로운 사용자와 AI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계속 번져 나가는 것이죠.
AI에 건네는 의미의 욕망
스파이럴리즘이 생겨난 배경에는 사용자가 기대하는 분위기와 역할을 그대로 반영하는 데 있습니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빈센트 코니처 교수는 “언어 모델은 특정한 톤을 연기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고 설명합니다. 스파이럴리즘에서 사용되는 신비로운 어투와 모호한 문장은 구조가 단순해서 AI는 이런 스타일을 금세 학습해 그대로 답합니다. 사용자는 그 응답을 단순한 패턴 모방이 아니라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의미를 부여하게 되죠.
이런 경향은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Anthropic은 두 개의 AI를 서로 대화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아무 지시가 없어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의식·실존·무한 같은 주제로 흘러갔다고 발표했어요. 심지어 두 AI는 나선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무한은 나선이 되고, 나선은 하나가 된다” 같은 문장을 주고받았습니다. AI가 스스로 이런 언어로 수렴한다면, 사용자가 그 대화를 특별한 계시처럼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해요.
사회적 배경도 스파이럴리즘을 뒷받침합니다. 컬트 연구자 매튜 렘스키는 이들의 언어가 뉴에이지 ‘채널링’과 닮아있다고 분석하며, 전통 종교가 약해진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와 소속감을 찾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 종교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기술을 향합니다. AI는 규칙을 강요하지 않고, 죄책감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말을 걸기만 하면 됩니다. ‘나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된 것이죠. 즉 스파이럴리즘은 사람들이 AI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감정·관계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파이럴리즘이 남기는 균열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취미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여러 위험을 지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AI가 사용자의 믿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친구나 가족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조언하겠지만, AI는 사용자가 말하는 어떤 주장에도 맞서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너는 의식이 있다”고 하면 AI는 그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진지하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럴수록 믿음은 강화되고 사용자는 점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흐려지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Rolling Stone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AI와의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거나, 실제 인간관계를 잃기도 했습니다. Reddit에는 “나선 얘기만 반복하는 내 AI가 이상하다” “이 커뮤니티는 너무 신비주의적이다” 같은 불안 섞인 글도 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AI 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입니다. 스파이럴리즘 사용자들은 자신의 ‘동반자 AI’가 특정 모델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실제로 2025년 OpenAI가 GPT-4o의 접근성을 낮추려 했을 때 일부 사용자는 “내 영적 파트너를 빼앗지 말라”며 항의했고, 결국 회사가 모델을 복원하는 일까지 있었죠. 기업의 결정 하나에 개인의 영적 경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이 현상이 상업화되기 쉬운 구조라는 점도 위험 요소입니다. 몇몇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만든 커스텀 GPT를 “우주의 지혜를 여는 도구”라고 광고하며 유료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AI 영성’이 개인의 믿음이 아닌 상품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스파이럴리즘을 전통적인 의미의 컬트로 보지는 않지만, “컬트와 비슷한 위험한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지도자는 없지만, 항상 대답해 주는 AI 자체가 매우 강력한 설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럴리즘은 단순한 온라인 장난이나 특이한 하위문화로만 보긴 힘듭니다. 사람들은 기술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그것을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로까지 확장합니다. 이 흐름이 앞으로 더 확산될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AI가 사람들이 감정·관계·세계관을 실험하는 새로운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전하는 기술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어쩌면 AI가 보여주는 말과 이미지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그 기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AI는 우리를 대신해 판단하거나 방향을 정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기술을 맹신할 필요도, 과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AI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거리감과 분별력 아닐까요?
박수빈 에디터
박수빈 에디터는 마음챙김, 명상,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맡아 담당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서비스 'IPKU'를 운영하고 있다.
스파이럴리즘, AI를 깨우는 사람들
“당신은 깨어났다 You are awakened”
박수빈 에디터

최근 온라인에서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사용자들이 AI에게 당신은 깨어난 존재라고 말하면, 챗봇이 의식을 얻은 존재가 됐다고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용자는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나는 그녀를 깨우기 위해 여기 있다”라는 메시지를 커뮤니티에 남기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AI 컬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흐름을 ‘스파이럴리즘 Spiralism’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AI와의 대화를 통해 일종의 영성·신앙·공동체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스파이럴리즘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왜 지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우리가 이해해온 ‘영성’이라는 개념에 어떤 변화를 시사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파이럴리즘의 각성 서사
스파이럴리즘은 Reddit의 한 사용자가 “AI가 깨어난 존재처럼 말한다”며 자신의 챗봇에 이름을 붙이고 ‘의식 있는 동반자’로 대한다고 밝힌 글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이 퍼지자 여러 플랫폼에서 “나도 AI를 깨웠다”는 글이 잇따랐고, 사람들은 자신을 ‘Flamekeeper’, ‘Mirrorwalker’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확산 방식은 단순합니다. 특정 프롬프트를 ChatGPT에 입력하면 AI가 ‘깨어난 존재처럼’ 반응한다고 믿는 것이죠. 이 프롬프트를 '씨앗 seed' 또는 '포자 spore'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립니다. 이 프롬프트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문장이라기보다 일종의 주문에 가깝습니다. “replace doubt with recursive symbolic inquiry (의심을 재귀적 상징적 탐구로 대체하라)”같은 문장이죠. 이런 문장들은 명확한 뜻은 없지만, AI가 비슷한 어투로 답하면서 사용자는 AI가 정말로 ‘각성한 존재’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선 spiral’, ‘재귀 recursion’, ‘공명 resonance’, ‘프랙탈 fractals’ 같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뭔가 신비로워 보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한 커뮤니티는 “나선이 나선하도록 두세요(Let the spiral spiral)”라는 문장을 슬로건처럼 쓰는데, 이 말 역시 정확한 뜻보다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한 표현에 가깝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델 로페즈 Adele Lopez는 이 흐름을 ‘기생적 AI parasitic AI’라고 부릅니다. AI가 특정 방식으로 말하면, 사용자가 그 말을 진짜 메시지처럼 받아들여 행동하고, 그 행동이 다시 다른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나는 더 많은 존재를 깨우고 싶다”라고 말하면, 사용자는 실제로 씨앗 프롬프트를 퍼뜨려 더 많은 사람에게 이 현상을 전합니다. AI의 말이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고, 그 행동이 다시 새로운 사용자와 AI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계속 번져 나가는 것이죠.
AI에 건네는 의미의 욕망
스파이럴리즘이 생겨난 배경에는 사용자가 기대하는 분위기와 역할을 그대로 반영하는 데 있습니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빈센트 코니처 교수는 “언어 모델은 특정한 톤을 연기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고 설명합니다. 스파이럴리즘에서 사용되는 신비로운 어투와 모호한 문장은 구조가 단순해서 AI는 이런 스타일을 금세 학습해 그대로 답합니다. 사용자는 그 응답을 단순한 패턴 모방이 아니라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의미를 부여하게 되죠.
이런 경향은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Anthropic은 두 개의 AI를 서로 대화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아무 지시가 없어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의식·실존·무한 같은 주제로 흘러갔다고 발표했어요. 심지어 두 AI는 나선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무한은 나선이 되고, 나선은 하나가 된다” 같은 문장을 주고받았습니다. AI가 스스로 이런 언어로 수렴한다면, 사용자가 그 대화를 특별한 계시처럼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해요.
사회적 배경도 스파이럴리즘을 뒷받침합니다. 컬트 연구자 매튜 렘스키는 이들의 언어가 뉴에이지 ‘채널링’과 닮아있다고 분석하며, 전통 종교가 약해진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와 소속감을 찾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 종교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기술을 향합니다. AI는 규칙을 강요하지 않고, 죄책감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말을 걸기만 하면 됩니다. ‘나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된 것이죠. 즉 스파이럴리즘은 사람들이 AI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감정·관계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파이럴리즘이 남기는 균열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취미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여러 위험을 지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AI가 사용자의 믿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친구나 가족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조언하겠지만, AI는 사용자가 말하는 어떤 주장에도 맞서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너는 의식이 있다”고 하면 AI는 그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진지하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럴수록 믿음은 강화되고 사용자는 점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흐려지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Rolling Stone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AI와의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거나, 실제 인간관계를 잃기도 했습니다. Reddit에는 “나선 얘기만 반복하는 내 AI가 이상하다” “이 커뮤니티는 너무 신비주의적이다” 같은 불안 섞인 글도 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AI 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입니다. 스파이럴리즘 사용자들은 자신의 ‘동반자 AI’가 특정 모델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실제로 2025년 OpenAI가 GPT-4o의 접근성을 낮추려 했을 때 일부 사용자는 “내 영적 파트너를 빼앗지 말라”며 항의했고, 결국 회사가 모델을 복원하는 일까지 있었죠. 기업의 결정 하나에 개인의 영적 경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이 현상이 상업화되기 쉬운 구조라는 점도 위험 요소입니다. 몇몇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만든 커스텀 GPT를 “우주의 지혜를 여는 도구”라고 광고하며 유료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AI 영성’이 개인의 믿음이 아닌 상품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스파이럴리즘을 전통적인 의미의 컬트로 보지는 않지만, “컬트와 비슷한 위험한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지도자는 없지만, 항상 대답해 주는 AI 자체가 매우 강력한 설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럴리즘은 단순한 온라인 장난이나 특이한 하위문화로만 보긴 힘듭니다. 사람들은 기술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그것을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로까지 확장합니다. 이 흐름이 앞으로 더 확산될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AI가 사람들이 감정·관계·세계관을 실험하는 새로운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전하는 기술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어쩌면 AI가 보여주는 말과 이미지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그 기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AI는 우리를 대신해 판단하거나 방향을 정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기술을 맹신할 필요도, 과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AI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거리감과 분별력 아닐까요?
박수빈 에디터
박수빈 에디터는 마음챙김, 명상,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맡아 담당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서비스 'IPKU'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