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각 분야 명사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주제의 인문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지혜의 깊이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연구[희망] 실패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석혜원 교수)

2025-07-15
실패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졸업한 지 고작 7년 만에, 저는 그야말로 엄청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지극히 짧았던 결혼 생활은 파탄 났고, 직장도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부랑자만 아니었을 뿐, 당시의 저는 영국에서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제게 품었던 걱정, 그리고 제가 제 자신에게 품었던 두려움이 모두 현실이 된 셈이었죠. 세상의 모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저는 제가 아는 한 가장 철저한 실패자였습니다.”


이는 ‘해리 포터’ 시리즈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J.K.롤링이 2008년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그녀는 인생의 바닥에서 깊은 고통과 절망을 경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절한 실패가 자신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고백한다.


“실패는 제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 주었습니다. 더 이상 제 자신이 아닌 척할 필요가 없었고, 제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죠. (중략) 실패는 제가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자유와 자기 발견, 그리고 궁극적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그녀의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실패를 극복한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실패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안에 내재된 긍정적 힘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누구나 실패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통찰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기회의 좌절, 관계의 종결, 노력의 무산, 실직이나 파산 등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눈앞의 쓰라린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즉각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패 앞에서 위축되고,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버텨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타인의 실패를 바라볼 때 우리의 반응은 현저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친구가 좌절하거나 동료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한결 너그럽고 낙관적인 조언자가 되어 “괜찮아, 금방 나아질 거야”, “다음엔 더 잘할 거야”라고 말한다. 마치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여정의 필연적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왜 동일한 '실패'라는 경험을 두고 이토록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할까? 자신의 실패는 외면하고 싶은 냉혹한 현실인 반면, 타인의 실패는 성장의 발판처럼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내 안의 실패: 자기보호의 그림자

실패는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 가치, 혹은 정체성이 손상되거나 기준 이하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위협을 내포한다. 시험의 낙방은 지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관계의 실패는 사랑받을 자격에 대한 의문을, 공개적인 실수는 사회적 평판에 대한 타격을 입힌다. 이러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자기보호(self-protection) 메커니즘을 가동시킨다. 이는 위협적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비상 체계 혹은 손상 통제(damage control) 시스템과 같다(Alicke & Sedikides, 2009).

자기보호 기제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향상이나 성장과 같은 장기적 목표보다 생존이나 고통 회피와 같은 즉각적인 목표를 최우선으로 설정한다. 이로 인해,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보다는,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한 다양한 심리적 전략에 의존하게 된다(Alicke & Sedikides, 2009).

가장 단순한 인지적 전략은 실패를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를 넘어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Hepper, Gramzow, & Sedikides, 2010). 예를 들어, 실패의 원인을 외부 요인이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했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을 회피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피드백 제공자를 무능하다고 평가하거나,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영역 자체의 중요도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도 한다.



심지어, 실패를 사전에 예측하고 평가받기 전에 스스로 실패의 빌미를 제공하는 자기구실 만들기(self-handicapping)와 같은 행동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요한 발표 전날 일부러 다른 약속을 잡아놓고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발표를 망친 것이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야”라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Tice(1991)의 실험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실험에서 그녀는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능력(비언어적 지능)을 평가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평가 전 연습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하게 했다. 연습을 덜 하는 것은 과제 실패 시 변명거리가 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성공할 경우 능력이 더욱 뛰어나 보이는 잠재적 이점이 있다. 즉, 연습량을 줄이는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은 자기보호와 자기고양(self-enhancement)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실험은 두 가지 조건으로 설계되었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오직 '실패'만이 유의미한 정보라고 알려주었다. 즉, 낮은 점수는 낮은 능력을 나타내지만, 높은 점수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에서는 반대로 오직 '성공'만이 유의미한 정보라고 설명했다. 높은 점수는 높은 능력을 나타내지만, 낮은 점수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들은 '실패'만이 의미 있는 조건에서 연습 시간을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실패하더라도 연습 부족 탓으로 돌리려는 자기보호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참가자들은 '성공'만이 의미 있는 조건에서 연습 시간을 줄였다. 이는 적은 연습으로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성공의 영광을 극대화하려는 자기고양 동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실패라는 위협 앞에서 자기보호 동기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실패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위협이 되지 않기에 오히려 성공을 통한 자기고양 동기가 강하게 작동함을 보여준다. 즉, 실패가 개인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수록, 자기구실 만들기처럼 당장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심리적 전략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로 인해 성장과 배움의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음을 시사한다.


타인의 실패: 장밋빛 전망의 함정

그렇다면 타인의 실패를 바라볼 때는 어떠한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 역시 실패를 마주했을 때, 우리 자신만큼 고통을 느끼고 실패로부터 배우기보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몰두하리라고 예상할까?

Eskreis-Winkler와 동료들의 최근 연구(2024)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에게 변호사, 간호사, 교사 등 전문직 자격 시험 불합격자가 다음 시험에 합격할 확률을 예측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재시험 합격률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예측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변호사 시험 불합격자의 실제 재시험 합격률은 35%였지만, 참여자들은 57.95%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간호사 시험의 경우에도 실제 합격률은 43%였으나, 예측된 합격률은 62.65%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실패 후 성공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이러한 경향은 전문직 시험뿐 아니라 건강 관리 실패와 같은 일상적 맥락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약물 과다 복용을 경험한 중독자가 실제로 치료를 받을 확률은 16.6%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이 확률이 50.80%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낙관적 편향이 단순히 정보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실패 경험(시험 불합격, 약물 과다 복용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단순히 합격률이나 치료 참여 확률을 예측하게 했을 때는 과대 추정 경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우리가 타인의 '실패'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그 실패가 오히려 성공 가능성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skreis-Winkler와 동료들은 이러한 현상을 주의 격차(attention gap)로 설명한다. 이들은 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을 경험자(experiencer)와 예측자(predictor) 집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경험자들은 생소한 고대 문자 퀴즈(총 3문제)를 두 라운드에 걸쳐 풀었다. 1라운드에서는 3문제 모두에 대해 '오답'이라는 피드백이 주어졌고, 2라운드 재시험에서 정답을 맞히면 보상을 받도록 하여 학습 동기를 부여했다. 2라운드 전에, 경험자들은 1라운드에서 틀린 3문제 각각에 대한 설명을 담은 피드백을 읽어볼지 선택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확인하는 피드백의 수와 2라운드에서의 정답 수를 측정했다. 예측자 집단은 경험자 집단이 수행하는 과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1라운드에서 3문제를 모두 틀린 사람들이 몇 개의 피드백을 확인할지, 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몇 문제를 맞힐지 예측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예측자들은 경험자들이 피드백을 확인하는 정도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경험자들은 1.16개의 피드백만을 확인했지만, 예측자들은 2.39개의 피드백을 확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패 당사자가 실제로 실패에 쏟는 관심과 예측자가 기대하는 관심 수준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간극이 바로 '주의 격차'이다. 더 나아가, 예측자들은 경험자들이 2라운드에서 거둔 실제 성공, 즉 평균 1.86개의 정답 역시 과대 추정하여 평균 2.42개의 정답을 맞출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결과는 우리가 ‘타인은 실패에 대해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실패로부터 더 많이 배우며, 그 결과 더 쉽게 성공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실패를 향한 이러한 낙관적 시선은 언뜻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함정이 존재한다. 실패가 쉽게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정작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의 필요성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Eskreis-Winkler와 동료들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약물 중독 회복률이나 전과자의 재범 방지율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예측했다. 예를 들어, 중독에서 회복한 후 재발하지 않을 실제 확률은 담배 10%, 알코올 20%, 약물 18%에 불과하지만(즉, 재발률이 각각 90%, 80%, 82%에 달한다), 응답자들은 이 확률을 각각 43.64%, 43.22%, 38.41%로 훨씬 높게 예측했다. 마찬가지로, 폭력, 재산, 마약 범죄자의 실제 비재범률(석방 후 9년 내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확률)은 각각 21%, 13%, 17%였지만, 응답자들은 이 확률을 각각 49.46%, 44.30%, 43.63%와 같이 훨씬 높게 예측했다. 이는 우리가 타인이 실패를 실제보다 훨씬 잘 극복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연구진이 응답자들에게 실제 회복률이나 비재범률을 알려주자, 약물 중독 치료나 전과자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는 실패해도 결국 잘 극복할 것이라는 낙관적 편견이, 역설적으로 이들의 재기를 돕기 위한 사회적 자원 투입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게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실패의 무게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우리는 어쩌면 다른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무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패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라는 거울 앞에 선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실패의 고통과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 기제를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의 실패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편향 또한 인지해야 한다. 내가 실패로부터 배우기 어려운 만큼, 타인에게도 실패란 결코 용이한 과정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의식적인 노력과 때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고된 여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패 앞에서는 자책하기보다, 실패가 주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기보호 전략 뒤에 숨어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나아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반대로, 타인의 실패를 마주할 때는 그들이 쉽게 배우고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피상적인 위로나 성급한 조언보다는, 타인의 어려움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타인이 실패를 극복하기까지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깊은 노력, 그리고 더 큰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건네는 진심 어린 공감과 실질적인 지지야말로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실패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균형잡힌 시선을 통해 우리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 앞에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고, 서로의 잠재력을 기꺼이 믿어주고 지지하는, 더욱 단단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석혜원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사람의 마음을 측정하는 방법, 측정을 통해 얻어진 자료를 분석하는 통계적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계량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