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
걸음을 설계하고 싶었다는 건축주
식물도 여리고 약한 것들로 심어
돌담, 말없이 견디는 것들
제주에서 태어나 4·3을 안고

‘도시 오아시스’ 외부.
‘AI 시대 다시 묻는 인문학’은 재단법인 지관(止觀)과 ‘신동아’가 공동 기획한 시리즈다. 그동안 사람을 통해 인문학의 현재를 추적해 온 이 시리즈가 이제 영역을 공간까지 확대하려 한다. 생각은 앉아서만 오는 게 아니다. 발길 닿는 곳, 눈길이 머무는 곳, 몸이 쉬는 곳에서 온다. 공간이야말로 인문학의 인프라다. 요즘에는 이런 사유의 공간을 만드는 움직임도 늘었다. 정원을 만들고 책방을 만들며 생각과 질문을 끌어내는 사람과 공간을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 주>
주택 수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제법 큰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보통의 월급쟁이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영훈 씨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평생 대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온 그였다. 다만 그에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다. 대개는 그 땅을 팔거나 세를 놓거나 건물을 세워 임대 수익을 얻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계산을 했다. 물려받은 땅을 노후자금으로만 쓰지 않고 그 땅이 원래 속해 있던 고향에 되돌려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땅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그의 짧은 말 안에는 물려받은 것을 사유재산으로만 여기지 않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가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그가 제주시에 짓고 있는 인문 공간 ‘도시 오아시스’를 찾았다.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제주시 도심에 인문 공간 ‘도시 오아시스’를 만든 이영훈 씨.
제주 공항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제주시 도심 한복판 길가 안쪽에 낮게 엎드린 건물 하나가 보였다. 제주종합경기장 맞은편 도로 안쪽으로 회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 세 동이 지붕을 낮게 드리운 채 서 있다.
주변에 아파트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기둥과 지붕만 있는 회랑이 이어진다. 회랑을 따라 걷는데 한쪽으로는 현무암 돌담이, 다른 한쪽으로는 마당의 식물들이 스친다.
이영훈 씨는 작업복 차림 그대로 기자를 맞았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고 했다. 회랑 한 기둥 아래 마당을 내다보며 그와 마주 앉았다. 우선 건물 이야기부터 했다. 그가 구현한 건축의 화두는 빛과 그림자였다.
“태양이 동에서 서로 넘어갈 때, 바닥과 벽면에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건물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건물 벽면은 노출콘크리트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질감이나 색감이 아니었다. 수차례 실험을 거쳐서 정원의 나무와 어울리는 질감을 내기 위해 음각을 조금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냈다고 한다. 소재는 콘크리트이지만 마치 나무 합판처럼 거친 질감을 살린 것이다.

햇빛이 만들어내는 나무 그림자를 보게 만들려고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특별한 공법으로 작업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오긴 했는데 찾기가 어려웠어요. 겉으로 눈에 띄지 않아 지나쳤습니다. 다들 높게 짓고 싶을 텐데 단층이란 것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과시하고 자랑하기보다 겸손하게 짓고 싶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에 숨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도드라지지 않게 낮은 데로 가자, 굳이 ‘나 여기 있다’ 하지 말자는 거죠. 건물 근처에 높은 아파트가 많잖아요.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위로 뻗어 올라갑니다. 반대로 저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야 그 안에 있는 풍경과 사람이 비로소 눈에 띌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회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벽이 없고 기둥만 있는 구조인데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벽이 없이 기둥만 새운 회랑 공간.
“회랑이 바로 이 공간의 핵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원을 ‘구경’하지 않고 ‘걷기’를 바랍니다. 효율만 따지면 회랑은 군더더기죠. 땅 한 평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것이 자본의 논리라고 해야 하나. 저는 반대로 가고 싶었습니다.”
왜죠.
“걷는다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그 시간 동안 생각이 따라오게 됩니다.
사찰이나 서원에 가도 회랑이 있잖아요. 건물과 건물을 기능적으로 잇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걸으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벽이 없으니 바람과 빛과 식물이 함께 따라옵니다. 걷는 사람은 건물 안에 있는 것도 정원 안에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어디쯤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저는 그 상태가 사유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길은 사람을 빨리 걷게 만들고, 좁고 굴곡진 길은 자연히 걸음을 늦춥니다. 그래서 마당 길도 일부러 직선으로 뚫지 않았어요. 완만하게 꺾이면서 다음 풍경이 한 번에 다 보이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래야 다음 모퉁이를 돌기 전에 잠깐이라도 ‘자기 생각’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요.”

복도 끝까지 이어진 이국적인 콘크리트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영훈 씨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회랑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기를 바라며 건물을 설계했다고 한다.
식물도 여리고 약한 것들로

식물도 작고 낮고 여린 것들을 골라 심었다.
마당을 채운 식물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라스 종류는 가늘고, 고사리는 여리며, 어린 나무들은 아직 지지대 없이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인다.
대개 정원이라면 화려하고 튼튼한 식물을 앞세우는데 반대인 것 같습니다.
“일부러 상록수도 안 심었어요.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다 반영하는 게 낙엽수잖아요. 겨울이면 겨울대로, 봄이면 봄대로 아름다운 우리 삶과 같은 것들을 심었습니다. 화려한 꽃, 굵은 줄기, 큰 잎을 가진 식물들은 존재감이 강해서 시선을 독차지하잖아요. 가늘고 여린 식물들은 오래 들여다봐야 비로소 보입니다.
‘버들마편초’라는 게 있는데 줄기가 사람 손가락보다 가늘어요. ‘청나래 고사리’나 ‘가는잎 처녀고사리’ 같은 고사리류도 그늘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랍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결이 있고, 흔들림이 있고, 회복하는 힘이 있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도 그런 에너지를 받아 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로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이 많던데 이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양지식물은 빛을 향해 뻗어나가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늘 식물은 그 자리에서 견디는 법을 배웁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두고 보면 잎맥 하나하나에 시간이 쌓여 있는 게 보입니다.”
큰 나무들보다 지지대를 댄 어린 나무가 많은 것도 특이해 보입니다.
“지금은 여린 상태지만 나중에는 울창해질 거예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여림 자체가 이 공간의 정서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것, 흔들리는 것, 도움을 받아야만 서 있을 수 있는 것… 이곳을 걷는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지지대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 않을까요.”

아파트 숲 한가운데 낮게 자리한 ‘도시 오아시스’.
돌담, 말없이 견디는 것들
현무암 돌담은 역시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돌담은 일부러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쌓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무암은 화려한 돌이 아니잖아요. 표면도 거칠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색도 무채색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돌들이 수백 년 동안 제주의 바람과 비를 견뎌왔잖아요. 그 존재만으로도 인내와 견딤의 에너지를 전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땅은 원래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버려진 땅이었죠.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하도 버려서 쓰레기장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제주 현무암 돌담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쌓아 재현했다.
어떻게 여기에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제가 본래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 집에도 조그맣게 정원이 있었지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냥 습관적으로 가지를 치고 물을 주고 그랬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식물도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랑을 갖고 키우다 보면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다 은퇴를 앞두고 제주에서 조경과 공원을 공부하는 모임에 매달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이 땅은 제가 상속받은 땅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묵직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매각할 수도 있고 상가를 세워 월세를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부모님이 원하시는 게 아닌 것 같았어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제 고향이기도 한 제주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궁리를 거듭하다 요즘 사람들이 마음이 힘들고 특히 변화가 너무 심하니까 차분하게 명상하고 사유하는 인문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조경 공부 모임에서 만난 훌륭한 분들이 제 뜻을 이해해 주시고 선뜻 작업을 시작해 주셔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기획했던 건 전혀 아니었는데 정말 드림팀이 됐어요.
2025년에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에이루트가 설계를 맡았고 ‘건축 명장’에 선정된 하백건설이 시공을, 그리고 자연주의 정원의 대가로 불리는 김봉찬 조경가의 손길이 더해져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기획된 조합은 아니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들이 맺어져 제겐 큰 행운이었지요.”

‘도시 오아시스’ 내부.
제주에서 태어나 4·3사건을 안고
사실 이영훈 씨의 본업은 공부다. 대기업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다 정년 퇴임했지만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대학원에서는 북한 경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서울시내 대학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게 된 것은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 많은 제주 사람이 그렇듯 그의 가족사 역시 4·3사건의 상흔이 새겨져 있다.
“외삼촌이 중학생 때 토벌대에 끌려가 죽다 살았고요. 아버지도 쫓겨서 산으로 밀려 올라갔다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친척 중에는 4·3 때 행방불명돼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가 대학원에서 분단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올라온 질문 때문이었다.
“제주가 왜 그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4·3사건의 전말을 좀 밝히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제주 역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파고들게 됐습니다. 석사 논문 제목이 ‘일제하 제주도의 인구이동’이었습니다.
제 개인적 추산이긴 한데 일제강점기 제주도 1인당 국민소득이 한반도 전체 평균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됐어요. 워낙 먹고살기가 힘드니 1930년대가 되면 제주 인구의 5분의 1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제주는 박정희 대통령 때 감귤 재배가 시작되면서 먹고살게 됐어요.”
고3 때 광주 항쟁 유인물을 돌리다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다는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다. 그러면서 당시를 풍미했던 통일 이슈에도 관심이 쏠렸다.
“당시 통일운동을 지켜보면서 담론이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한 거죠.”
박사 논문에서는 1960년대 북한의 자본축적 과정을 다뤘다.
“그 시절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잘살았잖아요. 북한 화폐에 나오는 인물 이미지만 봐도 1960년대, 70년대 초반까지는 희망에 찬 얼굴들이 보여요. 시간이 지나면서 유일 체제의 경직된 모습이 화폐 도안에도 반영되더라고요.”
천천히 걸으며, 여린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자
졸업 후 한국은행에 들어가 7년간 북한 경제를 연구하다 2011년 대기업들이 대북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SK 경제연구소로 스카우트됐다. 압록강, 두만강 접경지역을 비롯해 개성공단도 다니면서 타당성을 검토했지만 그룹 내부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해서 사업은 진척되지 못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경제 관련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다가 이렇게 인문 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돈도 많이 깨졌습니다(웃음). 비록 부모님이 주신 땅이기는 해도 저 나름대로 ‘공익’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온 터라 남들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공간도 지속 가능하려면 작게라도 수익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저 역시 인문학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믿고 살아온 것 같아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인간 자신과 세계를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공간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봐요.

주변 고층 건물들 사이에 일부러 단층으로 낮게 지었다.
단층 건물은 스스로를 낮춰 사람의 시선을 돌려세우고, 회랑은 걸음의 속도를 늦춰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고, 여린 식물들은 강한 것이 아니어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돌담은 침묵 속에서 오래 견디는 것의 무게를 알려줍니다. 저는 이 모든 요소가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여린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자.’ 그게 이 공간이 하는 유일한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랑을 되짚어 나오는 길, 기자의 걸음도 조금 느려져 있었다. 기둥 사이로 스치는 바람, 돌담의 거친 표면, 지지대에 기댄 어린 나무들이 주는 침묵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도시 속 오아시스’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제주의 새로운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출처: 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culture/article/all/13/6334195/1 “평범한 월급쟁이는 왜 도심 속 오아시스를 지었나” [AI 시대 다시 묻는 인문학⑤] 제주 인문 공간 ‘도시 오아시스’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
걸음을 설계하고 싶었다는 건축주
식물도 여리고 약한 것들로 심어
돌담, 말없이 견디는 것들
제주에서 태어나 4·3을 안고
‘도시 오아시스’ 외부.
‘AI 시대 다시 묻는 인문학’은 재단법인 지관(止觀)과 ‘신동아’가 공동 기획한 시리즈다. 그동안 사람을 통해 인문학의 현재를 추적해 온 이 시리즈가 이제 영역을 공간까지 확대하려 한다. 생각은 앉아서만 오는 게 아니다. 발길 닿는 곳, 눈길이 머무는 곳, 몸이 쉬는 곳에서 온다. 공간이야말로 인문학의 인프라다. 요즘에는 이런 사유의 공간을 만드는 움직임도 늘었다. 정원을 만들고 책방을 만들며 생각과 질문을 끌어내는 사람과 공간을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 주>
주택 수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제법 큰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보통의 월급쟁이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영훈 씨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평생 대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온 그였다. 다만 그에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다. 대개는 그 땅을 팔거나 세를 놓거나 건물을 세워 임대 수익을 얻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계산을 했다. 물려받은 땅을 노후자금으로만 쓰지 않고 그 땅이 원래 속해 있던 고향에 되돌려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땅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그의 짧은 말 안에는 물려받은 것을 사유재산으로만 여기지 않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가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그가 제주시에 짓고 있는 인문 공간 ‘도시 오아시스’를 찾았다.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제주 공항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제주시 도심 한복판 길가 안쪽에 낮게 엎드린 건물 하나가 보였다. 제주종합경기장 맞은편 도로 안쪽으로 회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 세 동이 지붕을 낮게 드리운 채 서 있다.
주변에 아파트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기둥과 지붕만 있는 회랑이 이어진다. 회랑을 따라 걷는데 한쪽으로는 현무암 돌담이, 다른 한쪽으로는 마당의 식물들이 스친다.
이영훈 씨는 작업복 차림 그대로 기자를 맞았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고 했다. 회랑 한 기둥 아래 마당을 내다보며 그와 마주 앉았다. 우선 건물 이야기부터 했다. 그가 구현한 건축의 화두는 빛과 그림자였다.
“태양이 동에서 서로 넘어갈 때, 바닥과 벽면에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건물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건물 벽면은 노출콘크리트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질감이나 색감이 아니었다. 수차례 실험을 거쳐서 정원의 나무와 어울리는 질감을 내기 위해 음각을 조금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냈다고 한다. 소재는 콘크리트이지만 마치 나무 합판처럼 거친 질감을 살린 것이다.
햇빛이 만들어내는 나무 그림자를 보게 만들려고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특별한 공법으로 작업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오긴 했는데 찾기가 어려웠어요. 겉으로 눈에 띄지 않아 지나쳤습니다. 다들 높게 짓고 싶을 텐데 단층이란 것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과시하고 자랑하기보다 겸손하게 짓고 싶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에 숨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도드라지지 않게 낮은 데로 가자, 굳이 ‘나 여기 있다’ 하지 말자는 거죠. 건물 근처에 높은 아파트가 많잖아요.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위로 뻗어 올라갑니다. 반대로 저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야 그 안에 있는 풍경과 사람이 비로소 눈에 띌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회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벽이 없고 기둥만 있는 구조인데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벽이 없이 기둥만 새운 회랑 공간.
“회랑이 바로 이 공간의 핵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원을 ‘구경’하지 않고 ‘걷기’를 바랍니다. 효율만 따지면 회랑은 군더더기죠. 땅 한 평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것이 자본의 논리라고 해야 하나. 저는 반대로 가고 싶었습니다.”
왜죠.
“걷는다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그 시간 동안 생각이 따라오게 됩니다.
사찰이나 서원에 가도 회랑이 있잖아요. 건물과 건물을 기능적으로 잇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걸으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벽이 없으니 바람과 빛과 식물이 함께 따라옵니다. 걷는 사람은 건물 안에 있는 것도 정원 안에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어디쯤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저는 그 상태가 사유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길은 사람을 빨리 걷게 만들고, 좁고 굴곡진 길은 자연히 걸음을 늦춥니다. 그래서 마당 길도 일부러 직선으로 뚫지 않았어요. 완만하게 꺾이면서 다음 풍경이 한 번에 다 보이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래야 다음 모퉁이를 돌기 전에 잠깐이라도 ‘자기 생각’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요.”
복도 끝까지 이어진 이국적인 콘크리트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영훈 씨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회랑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기를 바라며 건물을 설계했다고 한다.
식물도 여리고 약한 것들로
식물도 작고 낮고 여린 것들을 골라 심었다.
마당을 채운 식물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라스 종류는 가늘고, 고사리는 여리며, 어린 나무들은 아직 지지대 없이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인다.
대개 정원이라면 화려하고 튼튼한 식물을 앞세우는데 반대인 것 같습니다.
“일부러 상록수도 안 심었어요.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다 반영하는 게 낙엽수잖아요. 겨울이면 겨울대로, 봄이면 봄대로 아름다운 우리 삶과 같은 것들을 심었습니다. 화려한 꽃, 굵은 줄기, 큰 잎을 가진 식물들은 존재감이 강해서 시선을 독차지하잖아요. 가늘고 여린 식물들은 오래 들여다봐야 비로소 보입니다.
‘버들마편초’라는 게 있는데 줄기가 사람 손가락보다 가늘어요. ‘청나래 고사리’나 ‘가는잎 처녀고사리’ 같은 고사리류도 그늘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랍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결이 있고, 흔들림이 있고, 회복하는 힘이 있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도 그런 에너지를 받아 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로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이 많던데 이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양지식물은 빛을 향해 뻗어나가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늘 식물은 그 자리에서 견디는 법을 배웁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두고 보면 잎맥 하나하나에 시간이 쌓여 있는 게 보입니다.”
큰 나무들보다 지지대를 댄 어린 나무가 많은 것도 특이해 보입니다.
“지금은 여린 상태지만 나중에는 울창해질 거예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여림 자체가 이 공간의 정서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것, 흔들리는 것, 도움을 받아야만 서 있을 수 있는 것… 이곳을 걷는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지지대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 않을까요.”
아파트 숲 한가운데 낮게 자리한 ‘도시 오아시스’.
돌담, 말없이 견디는 것들
현무암 돌담은 역시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돌담은 일부러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쌓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무암은 화려한 돌이 아니잖아요. 표면도 거칠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색도 무채색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돌들이 수백 년 동안 제주의 바람과 비를 견뎌왔잖아요. 그 존재만으로도 인내와 견딤의 에너지를 전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땅은 원래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버려진 땅이었죠.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하도 버려서 쓰레기장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제주 현무암 돌담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쌓아 재현했다.
어떻게 여기에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제가 본래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 집에도 조그맣게 정원이 있었지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냥 습관적으로 가지를 치고 물을 주고 그랬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식물도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랑을 갖고 키우다 보면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다 은퇴를 앞두고 제주에서 조경과 공원을 공부하는 모임에 매달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이 땅은 제가 상속받은 땅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묵직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매각할 수도 있고 상가를 세워 월세를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부모님이 원하시는 게 아닌 것 같았어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제 고향이기도 한 제주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궁리를 거듭하다 요즘 사람들이 마음이 힘들고 특히 변화가 너무 심하니까 차분하게 명상하고 사유하는 인문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조경 공부 모임에서 만난 훌륭한 분들이 제 뜻을 이해해 주시고 선뜻 작업을 시작해 주셔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기획했던 건 전혀 아니었는데 정말 드림팀이 됐어요.
2025년에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에이루트가 설계를 맡았고 ‘건축 명장’에 선정된 하백건설이 시공을, 그리고 자연주의 정원의 대가로 불리는 김봉찬 조경가의 손길이 더해져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기획된 조합은 아니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들이 맺어져 제겐 큰 행운이었지요.”
‘도시 오아시스’ 내부.
제주에서 태어나 4·3사건을 안고
사실 이영훈 씨의 본업은 공부다. 대기업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다 정년 퇴임했지만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대학원에서는 북한 경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서울시내 대학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게 된 것은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 많은 제주 사람이 그렇듯 그의 가족사 역시 4·3사건의 상흔이 새겨져 있다.
“외삼촌이 중학생 때 토벌대에 끌려가 죽다 살았고요. 아버지도 쫓겨서 산으로 밀려 올라갔다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친척 중에는 4·3 때 행방불명돼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가 대학원에서 분단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올라온 질문 때문이었다.
“제주가 왜 그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4·3사건의 전말을 좀 밝히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제주 역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파고들게 됐습니다. 석사 논문 제목이 ‘일제하 제주도의 인구이동’이었습니다.
제 개인적 추산이긴 한데 일제강점기 제주도 1인당 국민소득이 한반도 전체 평균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됐어요. 워낙 먹고살기가 힘드니 1930년대가 되면 제주 인구의 5분의 1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제주는 박정희 대통령 때 감귤 재배가 시작되면서 먹고살게 됐어요.”
고3 때 광주 항쟁 유인물을 돌리다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다는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다. 그러면서 당시를 풍미했던 통일 이슈에도 관심이 쏠렸다.
“당시 통일운동을 지켜보면서 담론이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한 거죠.”
박사 논문에서는 1960년대 북한의 자본축적 과정을 다뤘다.
“그 시절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잘살았잖아요. 북한 화폐에 나오는 인물 이미지만 봐도 1960년대, 70년대 초반까지는 희망에 찬 얼굴들이 보여요. 시간이 지나면서 유일 체제의 경직된 모습이 화폐 도안에도 반영되더라고요.”
천천히 걸으며, 여린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자
졸업 후 한국은행에 들어가 7년간 북한 경제를 연구하다 2011년 대기업들이 대북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SK 경제연구소로 스카우트됐다. 압록강, 두만강 접경지역을 비롯해 개성공단도 다니면서 타당성을 검토했지만 그룹 내부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해서 사업은 진척되지 못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경제 관련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다가 이렇게 인문 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돈도 많이 깨졌습니다(웃음). 비록 부모님이 주신 땅이기는 해도 저 나름대로 ‘공익’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온 터라 남들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공간도 지속 가능하려면 작게라도 수익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저 역시 인문학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믿고 살아온 것 같아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인간 자신과 세계를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공간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봐요.
주변 고층 건물들 사이에 일부러 단층으로 낮게 지었다.
단층 건물은 스스로를 낮춰 사람의 시선을 돌려세우고, 회랑은 걸음의 속도를 늦춰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고, 여린 식물들은 강한 것이 아니어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돌담은 침묵 속에서 오래 견디는 것의 무게를 알려줍니다. 저는 이 모든 요소가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여린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자.’ 그게 이 공간이 하는 유일한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랑을 되짚어 나오는 길, 기자의 걸음도 조금 느려져 있었다. 기둥 사이로 스치는 바람, 돌담의 거친 표면, 지지대에 기댄 어린 나무들이 주는 침묵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도시 속 오아시스’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제주의 새로운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출처: 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culture/article/all/13/6334195/1 “평범한 월급쟁이는 왜 도심 속 오아시스를 지었나” [AI 시대 다시 묻는 인문학⑤] 제주 인문 공간 ‘도시 오아시스’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